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25

이별, 잘 기억하는 일.

by Shysbook

영업 종료를 앞둔 서점에 들렀다. <그렇게 책이 된다> 라는 성산동에 있는 서점이었다.

이 서점을 알게된 건 순전히 SNS를 통해서다. 지인의 피드에 올라온 작고 아담한 서점. 창가 너머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 곳을 꼭 들러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지만 합정과 마포구를 자주 들렀지만, 정작 시간이 나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대며 찾는 걸 소홀히했었다.
‘시간’이 주는 안일에 취해 ‘유한성’ 을 잊고 살다가 막상 끝이라고하니 부랴부랴 붙잡으려는 내가 부끄러웠다. 있을 때가 소중한 법인데 말이다.

서점 문을 열자 스피커 너머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곳의 단골 손님들이 이미 커피 한 잔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업 종료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들어온 책들을 사다보니 서가엔 책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장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희 서점이 곧 영업을 종료해서.. 책이 많이 없지요..?”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씀하며 괜찮은 책이 없나 이리저리 둘러봤다.

너무 오랫동안 책을 고르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말씀을 먼저 걸어주시어 이런 저런 대화를 자연스레 나눌 수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소식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주셨을 때 낯선 사람에게 반겨준 환대에 안그래도 먹먹해진 마음이 몽글거렸다.

사장님께서는 마지막 영업 전까지 책을 추천해 주시고, 책을 골라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단골 손님들 중 한 사람이 “저기,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려고 하는데, 정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 라는 부탁을 들어드렸다.


정문 앞 스툴에 나란히 앉아있는 사람들이 나온 사진 한 장을 찍어드렸다. 세 사람의 표정에서 행복함과 동시에 묘한 아쉬운 표정이 짙게 묻어나왔다.사진을 찍는 나도 감출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무어라 설명해도 개운치 않을 정도였다.

서점에 오래 있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엔 방문할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을 것만 같기에, 서점 문을 열고 다음 길을 나섰다. 허나, 여전히 그 서점에 눈이 밟혀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제 이 서점에서 더 이상 책을 살 수도, 그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도, 스툴에 앉아 햇살을 느낄 수도 없다.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과 소탈한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글을 쓸 수도 없다는, 무언가를 더는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벅찬 감정이어서였을까.

사진으로나 영상으로 남길지라도 그 날의 기억들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어 그저 비상하지 못한 기억력을 의존한 채로 되내어 볼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의 무수한 복기 끝에 추억을 남김과 더불어 이별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별에 대해 늘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아쉬움’ , ‘먹먹함’ , ‘안타까움’ ,’슬픔’ 등등. 감정을 설명하는 단어들을 나열해보지만, 한 없이 쏟아지는 감정의 폭포수 앞에서 차마 모든 걸 담아내기란 부족하기만하다. 내 감정이 메말라서일까. 아니면 감정 자체가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들고 복잡해서일까. 왜 이별에 대해 무수히 많은 책들이 나오고 노래가 나오는 지 알겠다. 실타래만큼 풀기힘들고 엉켜있는 것들이 많아서겠지. 감정을 감정으로 풀기엔 엉키고 섥힌 영역이 많으니까.


영어로 이별을 ‘farewell’ 이라고 한다. fare 랑 well 의 단어를 따로 때서 보면, 둘 다 ‘잘’ 이라는 뜻이 담겼다. 우린
이별 앞에 그저 ‘잘’ 기억하고 그 순간을 ‘잘’ 간직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하는 일에도 이별을 고할 때가 있다. 영업이 불가피하게 종료된다든지,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아니면 다른 서점이나 지점으로 옮기게된다든지 말이다.


그 상황이 언제 찾아올 진 모른다. 다만, 그런 상황에 놓일 때 소중한 기억들은 잘 간직한 채, 그 다음을 ‘잘’ 살아갈 수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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