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을 앞두고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어제 mbti 검사를 하는데 이런 항목이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기를 어려워하시나요?”
수줍음이 많았던 과거엔 사람들 앞에서 제 이름과 출신 학교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떠오른 istj 의 고백을 서두에 남깁니다.
어떻게 서점 일을 시작하셨나는 질문에 저의 답은 늘 뻔하지만 이 말이 가장 정답이라 믿고 있습니다.
“책이 좋아서요.”
혹여나 성의가 없는 답변이라 생각이들면 덧붙여 이야기하곤 합니다.
책과 사람이 이어지는 그 묘한 매력이 너무 좋아요.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온라인에서 서평을 남기는 일 자체가 좋으니까요.
서점 일을 시작한 지가 어언 9개월 째 접어들었습니다. 책을 진열하고, 입고하고, 매입하고,결제를 진행하고, 각 종 행사 준비도 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인들도 제가 하는 일에 “너와 잘 어울려서 좋다.” 라는 반응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아, 그런가요? 아하하~” 그러며 내심 속으로 기분이 좋다가도 이내 머쓱해지곤 합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물을 수 있겠지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진짜 행복할텐데, 왜 머쓱해 하시나요?”
음, 잠시 작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저는 운 좋게 첫 직장에 입사했지만,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아 퇴사했습니다. 그 후로 이력서를 쓰고 스무 곳 넘게 회사 면접을 봤으나 전부 떨어졌지요. 자신감은 떨어져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버리다가 문득 <프란시스 하>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무용수가 꿈인 주인공이 치열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 ‘이왕 취업문이 좁은 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라고 도전 의욕을 다시금 불태웠죠.
다음 날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서점’ 을 검색하니 서점 직원 채용 공고가 때마침 떴고,주저없이 곧장 이력서를 썼습니다. 면접까지 순조롭게 이뤄져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도 기쁘다거나 행복하다고 말하기가 좀 난처했던 것은, 서비스직이 처음이기도 했고 전공인 공학을 포기하고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책이 좋아서 들어갔는데 막상 일에 부딪히면 일과 취미조차 싫어지지 않을까 걱정까지 들었습니다.
물 밀듯 밀려오는 고민을 토로할 곳이 주변에 마땅치 않아 독립 출판 문의를 하던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이런 저의 고민을 남기자 한 사람이 이런 장문의 답변을 달았습니다.
남들처럼 해야 정답이라 교육받았기에 그 방향이 달라지면 겁을 먹고 망설이는 건 본인 탓이 아닙니다. 노력은 본인이 책임질 수 있지만 운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니까요. 운이 좋았으면 기꺼이 좋아하는 염치를, 운이 나쁘면 자기 탓 말고 살짝 넘겨버리는 뻔뻔함도 때론 필요하답니다.
답변을 읽으며 제가 걸어온 발자국을 살펴봅니다. 어지러이 놓여있었지만 알고보니 일관된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을 3년 간 해왔던 저였고, 사람들에게 책 선물 했을 때 책 한 권이 가진 위력이 비록 나비 날개짓처럼 미약할지라도 훗날 삶에 큰 변화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에 기뻐하는 제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전공 공부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즐거웠고,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와 걱정들이 단숨에 풀어지니 언젠간 이 일을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 때 생겼습니다.
하지만 서점 업황이 어려우니 가벼운 취미 정도로만 여겨라는 타인의 조언과 너보다 능력 좋은 사람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야기에 마치 높다란 나무 위에 걸린 포도처럼 여기며 그 꿈을 접어야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남들이 걸어온 길을 밟는 게 성공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삼는 게 정답이라 여겼기에 루트에서 벗어난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의식한 나머지 저의 욕구를 억눌렀던 것이었습니다.
허나 욕구를 억누르고 타인의 길을 따라 간 일은, 어떠한 기쁨도 확신도 서지 않았습니다.하루하루 출근길이 곤욕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아했던 일은 전공만큼이나 노력해왔고,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꾸준히 즐겁게 해왔습니다. 그걸 기회가 왔을 때 포착했던 것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운의 영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혹시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하고 싶은 일을 선뜻하기 어려우신가요? 단 하루라도 좋습니다. 한 번 부딪혀봅시다. 하지 않으면 그건 한낱 신기루에 불구합니다. 그 운은 또 다시 찾아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신이 좋아서 해온 일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그건 과정이 됩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것보다 본인이 택한 길이 다소 거칠고 투박할지라도 그 일은 당신을 성장시킬 겁니다.
처음은 늘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더듬어보면,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