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3
A로부터 신세를 졌다. 타지생활의 고단함과 미래의 불안은 풀리지 않은 채, 우울감이 짙어져만 갔을 때 만난 A는 담담하면서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한없이 고민을 들어주었다.
어느 시장근처 24시간 국밥집, 오후 5시 무렵.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이 곳엔 손님들이 없어 한적했다.
빈 테이블에 둘이 마주보고 앉았다. 이윽고 주문한다.
“돼지 하나랑 섞어 하나요.”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밑반찬이 나오고 뚝배기 그릇에 담긴 국밥이 팔팔끓는 상태로 식탁에 올려졌다.
어색함이 맴돈다. 여전히 국밥은 뜨거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안경 렌즈에 김이 서리고 어색함에 긴 침묵이 흘렀다. 말을 꺼내야지 싶다가도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좀처럼 없을 듯하여 머릿 속으로 말하기를 주저한다.
서렸단 말이 맺혔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람 관계가 서툰 나는 무슨 말을 선뜻 나서서 꺼내는 법이 없었다.
A가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계획된 우연이란 말 들어본 적 있니?”
난생 처음 듣는 이 한 마디는 복잡하고도 낯설었다. 의도한대로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계획’ 그렇지 않은 ‘우연’. 상반된 말이 나란히 들어간 이 문장은, ‘계획했어도 계획하지 않은 것’ 처럼 모순 같은 말같이 느껴졌다.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는걸까 싶었다.
하지만 A는 심리학 전공자답게 알기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한다.
“무슨 일을 할 지, 어떤 미래를 그릴지 알 수 없는 상황가운데서 너가 하는 일을 묵묵히 한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상황과 기회가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단다.
그 때를 잡으면 분명 업으로 삼게 되는 거지.”
‘내 의지가 필요한 계획과 그렇지 않은 우연이 겹치는 순간이 온다는 것.’ 결국 타이밍이였다. 이 둘이 만나 정말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 바로 계획된 우연이라고 한다.
일과 학업에 좌절하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나를 본 그는 일요일 오후, 나에게 계획된 우연처럼 필요한 말을 해준 것이다.
서로 다른 성질이 한데 모인 말에 담긴 깊은 의미를 건져올리자 비로소 채워도 공허하기만했던 속이 든든해질 수 있었다. 좌절보다는 하나의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기로 약간의 다짐을 하게되었다.
2017년 8월 13일 일기.
2020년 9월 7일
계획된 우연은 3년 후에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