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주제
제목: 옴뇸뇸
요즘 ‘만보 걷기 모임을 하는’ ‘묘미’에 푹 빠졌다. 여기서 미묘에서 ‘묘’는 우리가 떠올리는 그것이 맞다.
단톡방에 하루 일 만보 걸음을 인증샷으로 남기고 일만 보를 걸으면서 마주친 고양이 사진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부지런히 걸으면서 받는 일종의 힐링처럼, 피로한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고양이의 올망졸망한 눈빛, 어쩌다 식구들끼리 옹기종기모여 무리를 짓는 모습에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간혹 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 츄르를 주는 사진이나 피드를 보면 나도 모르게 배고픈 고양이를 보면 ‘꼭 츄르를 줄거야!’ 라고 다짐했다.
마음에 있는 것을 실천으로 옮긴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39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4개들이 일제산 츄르를 사고 밖으로 나섰다. 마침 자동차 밑을 왔다갔다하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희고 검은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츄르를 까서 내미는데, 녀석. 경계가 많은 탓에 츄르를 내밀어도 감흥이 없이 그저 주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츄르 하나 주는 것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구나.
가방 앞주머니에 남은 츄르를 집어넣고 언젠간 고양이를 만나면 꼭 한 포(?) 물어 드려야지라며 내일을 기약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하고 걸어갔다.
하지만 그 다음 날 길가에서 우연히 본 고양이에게도 츄르를 줘도 도망가기에 바빴다.
공원 계단에 앉아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한 날에도 어김없이 츄르를 들고 갔는데 역시나 도망가버렸다.
이러다 츄르를 주지도 못하고 내 가방에서 썩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심을 지나던 중. 어느 공장 옆 내리막 계단에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우연히 발견했다.
내리막길 근처 하얀 조명아래 옹기종기 붙어있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다가 ‘얘네들 배고프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에서 츄르를 꺼내볼까 싶다가도 이미 세 번이나 차인(!) 경험이 있어서 츄르를 주는 것이 어렵겠거니와 싶다가도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남아있다고 생각에 가방 앞주머니를 열고, 츄르를 한번 더 용기내어(?) 꺼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나는 고양이를 대하기 힘든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한 마리는 경계가 심하여 츄르를 보더라도 무심한 척하며 멀리 도망쳤고, 삼색이 고양이 한 마리와 검은색 새끼 고양이 한 마리에게
츄르를 가까이 가져가니 서로 핥아먹으려 옴뇸뇸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녀석 많이 배가 고팠구나.’ 저 으슥한 밤길에 아무도 찾지 않는
저런 곳에서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해 굶주려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옴뇸뇸 거리는 고양이를 보며 피곤했던 마음이 해소되는 것 같다가도 이내 걱정이 들기도 했다.
문득 TV에서 길고양이의 수명은 길어도 3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 거칠고 위험이 도사리는 도시에서 3년이란 시간도 워낙 길게 느껴질 것이고, 날 때부터 위험한 환경에 처한 고양이들의 몸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까딱 잘못 움직였다간 차에 치여 죽거나 사람들의 발길에 치여 다칠 지도 모르고 원인모를 세균에 감염되어 면역에도 취약한 상황이다. 도시는 그들에게 안락한 보금자리가 아닌 생존 그 자체였다.
험난한 도시를 견디지 못하면 죽음 뿐이라는 걸 몸으로
그들은 알고 있었다.
옴뇸뇸하는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며 잠시라도 긴장으로 지친 몸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양이는 사람의 온정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살아가는 것만 같다. 그들을 위해 스티로폼을 개조해서 집을 만들어 놓은 단체도 있었고, 공터에 먹이를 가져다 놓는 사람도 있었다.골육종에 걸린 고양이를 보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온정이 모여 고양이가 조금은 더 건강하게, 안전하게 자라길 바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