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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이음 Nov 22. 2022

전지적 딸 시점-김장

김장은 명분이고 아들딸이 함께여서 좋다

친정은 서해 바닷가 근처라 휴가이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무조건 친정 쪽으로 달려가 바다도 보고 엄마와 점심 한 끼 하고 오면 그게 바로 힐링이다. 그런 시골이 고향이라는 것이 뿌듯하고 든든하다. 엄마 혼자 농사를 지으실 때는 시골에 내려가면 엄마 일을 도와 드려야 하기에 내려가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때는 아이들도 어릴 때라 더욱더 힘들었지만 농사 지은 것을 바리바리 싸 주시는 엄마의 정성으로 배부른 한 해를 보내기도 했다.


그중에 제일이 김장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는 텃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는 것부터 시작되었고 엄마의 밭이 사라진 후에는 이모네 밭에 가서 식구들을 위해 1년을 준비하신 무농약 김장 재료들을 수급해 와야 했다. 적어도 2일에서 3일간의 준비는 자식의 몫이었지만 그전에 자잘한 김장 재료들을 준비하시는 엄마는 조상님과 남편을 모시는 제사보다 더 정성을 들이는 행사였다. 자식들이 다 각기 가정을 이루고 식구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김장 포기수는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했던 시기는 300포기였을 때인 거 같다. 아직도 기억나느 것은 이모부가 트럭으로 끊임없이 실어 나르던 배추와 무가 산을 이루고 다시 그것을 절이면서 도대체 이걸 누가 다 먹는 다고 이리 많이 하냐고 투덜대었지만  그다음 해에 다시 모여 김장을 하면서 그 많던 김치는 누가 먹었냐면서 신기해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4남매의 김장은 엄마의 밭이 줄어들고 손주 손녀들이 커서 이제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조금씩 포기수가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100포기 이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김장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큰 동생이 이제는 김장을 그만해야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의 건강도 안 좋으시고 이모네서 가져오는 번거로움도 크니 김장은 이제 알아서 각자 해 먹자고 했다. 아직 김장이 남아 있기도 했거니와 주변에서 가끔 해주는 김치도 있고 하니 김장은 그만하자는데 우선 동의를 했다. 김장 없는 해가 되자 코로나도 심각해지면서 잘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쉬웠는지 자식들 집에 각 2통의 김치를 해서 보내셨다. 엄마의 그런 정성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일반 김치보다 김장 때 한 김치가 더욱 맛있었다. 손녀들은 외할머니 뵈면 그래도 할머니 김장이 최고라는 찬사를 보냈다. 아이들 입맛에도 김장 김치가 맛있었나 보다. 그렇게 김장을 하지 않고 한 해가 지나갔다. 


올해 6월 어느 날 엄마 집 텃밭을 보니 아기자기 채소들을 심어져 있었다. 채소 가꾸는 재미에 하루를 보낸다시며 이제 나이도 있어 너무 많은 것은 힘들지만 10평도 안 되는 이 텃밭이 엄마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자랑이시다. 그러다 갑자기 올해는 여기에 배추와 무를 심으면 충분히 김장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이제 김장은 안 하신다고 하시더니 왜 하시려 하냐 여쭈니 엄마 왈 "이모네서 배추와 무를 가져오는 것이 신경 쓰여서 안 하려 했는데 안 하다 보니 애들 김치가 걱정되어 각 2통씩 김치를 담아 주다 생각해보니 그러려면 김장을 하는 것이 낫겠더라" 하신다. 텃밭에 배추는 50포기 정도 될 거라면서 포기도 크지 않아서 김치 담그는 거라 생각해도 된다 하시면서 필요한 사람들만 가져가라 하신다. 그래도 은근 김장 김치를 좋아했던 나는 감사해했고 여동생은 필요 없다 했으며 남동생들도 처가에서 해준다 하니 결국은 나만 엄마와 김장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김장하는 날!!! 나는 외할머니 김장에 반한 우리 두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꼭두새벽에 내려갔다. 다행히 큰 남동생이 엄마가 힘드실까 봐 조카와 내려와서 배추 따고 절이고 있었다. 배추 속이 안 들어차서 50포기를 또 사서 절였다는 말에 우리는 너무 많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엄마의 계량은 정확해서 결코 많은 양이 아니었다. 아들, 딸과 손주 손녀들이 와서 외할머니가 심은 배추를 뽑고 절이고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나 보다. 50포기 배추를 더 샀다고 구박받은 엄마는 혹시 너무 많으면 어쩌나 마음 졸이셨나 본데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적당한 양이었다. 잘 절여진 배추 속에 잘 무쳐진 양념을 넣고  푹 삶은 돼지고기를 쌈 싸 먹으니 바로 여기가 맛집이었다. 양념에는 생새우와 사과, 양파를 듬뿍 넣어 설탕 없이도 맛이 나니 저절로 손이 간다. 어깨가 아파서 힘들다 하시더니만 껑충껑충 뛰어다니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김장의 힘듬은 자식들과 함께 어울려 1박 2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상이 된 듯싶다.




김장은 명분이고 아들딸이 1박 2일 함께여서 기쁘고 엄마가 주체가 되어 진두지휘 할 수 있음에 즐거우신듯하다. 김장은 엄마에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1년간 김치를 먹으면서 아들딸, 손자 손녀들이 엄마와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정성에 감동받기도 한다. 김장을 하는 순간은 힘들지만 함께 만들었다는 감동은 1년 가기 때문에 김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친정 엄마의 진두지휘가 있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김장은 명분이고 아들딸이 함께여서 좋은 거지"라며 지나가면서 하신 엄마의 한마디가 계속 귓가를 맴돈다.


#김장 #친청엄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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