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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이음 Jul 30. 2021

그녀의 나이 마흔일곱을 지나고나니

함께 걷는다는 것

여름이다. 올해는 무지 덥다.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이 뉴스를 뒤덮고 지금의 지구가 미래에 존재할지 여부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런데 나는 맞이하는 여름마다 나에게는 더없이 뜨거운 여름이다. 이상하게 나이 먹을수록 여름은 매년 내 마음속에서 이상 기온을 가져오고 있다. 


 직장 초년생으로 일하고 있던 어느 여름날 직장으로 전화가 걸려 왔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여와라. 너 오기 기다리마"  저 멀리서 들렸던 음성은 또렷이 기억나지만 누가 내게 전화를 주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간경화로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이 하셨지만 그리 쉽게 가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엄마에게 내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한번 내려갈게라는 지나가는 말에도 남자친구에게 시골집을 보여주려면 책 잡히지 않아야 한다시며 전체 리모델링을 하셨다. 지금이야 리모델링이라 하지만 지붕 색도 칠하고 대문도 다시 달고 마루 부엌을 신식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아파트 처럼 만들어 놓으셨다. 나도 변한 집을 구경하지 못했던 터여서 가을 정도에 내려가 뵙기로 지나가는 말로 했었다. 그렇다고 내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게 상견례처럼 시골집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시골이다 보니 놀러가자라는 뜻으로 이야기했었고 부모님께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가을정도 한번 놀러 갈게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아프신 아버지께서는 첫째사위 될 사람이 시골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나름 큰 일이었다. 그래서 아프신 중에도 깨끗한 집에서 첫째 사위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시골 촌집을 거의 새로 짓다시피한 리모델링을 해 놓으신거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멍한 상태에서 터미널로 향하면서 남자친구(현재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시골 내려가. 아빠가 돌아가셨대'라는 말만 뒤로 하고 부랴 부랴 버스에 몸을 맡겨 내려갔다. 그런데도 기특하게 남자친구(현재의 남편)는 물어 물어 시골집을 찾아왔다. 내가 도착하고 한시간도 안되어 집을 찾아왔다. 남자친구(현재의 남편)까지 도착해서 아빠의 눈을 감겨드렸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때의 남자친구(현재의 남편)의 행동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같이 살고 있지 않을것 같다. 엄마에게도 동생들에게도 그의 당찬 행동은 의지가 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아빠를 보낸 엄마는 그래도 씩씩했다. 그녀의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첫째딸을 시집 보내지는 못했지만 예비사위와 함께 아빠를 보낸 것이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 위안이 되었단다. 집 수리하고 들떠 있던 아빠가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그 가을이 오기전에 떠나가시고 떠날때 함께 해준 큰 사위에게는 이것 저것 의논하면서  큰일을 헤쳐나갔다. 큰사위가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상대가 되어준 큰 사위에게 항상 엄마는 고마워 했다. 어느날 내가 "엄마는 큰사위가 큰 돈도 못 벌고 능력도 별로인데 괜찮어?"라고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의 답변은 의외였다. "니 신랑이 바람을 피우니? 사업한답시고 껄렁대기를 하니? 사람이 진득하고 유식하잖니! 유식하면 되지 나는 똑똑한 사람이 좋아" '잉, 이건 무슨 말이지? 알수 없는 기준이구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엄마의 이상한 사위 기준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게 잡학이지 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지식을 가지고 우리 엄마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나이 마흔 일곱을 넘어 오십초반에 들어서면서 왜 우리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가장으로서 대학생,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집안대소사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이것을 같이 의논해줄 상대가 필요했고 나의 남자친구이자 남편이된 그는 착실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 남편과 같이 상의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을 혼자 처리하기에 어려울때 엄마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러구 저러구 상황을 이야기 했고 안심시켜드리는 역할을 장남이 성인이 될때까지 했다. 아마 그런 사연이 있어 사위에 대해 높은 평가를 주신것 같다. 


마흔일곱의 나이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안정적 생활을 보낼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보통의 경우에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남편과는 생활 패턴을 맞추어 서로를 이해할 줄 알고 사회적으로 큰 무리없으면 안정적 사회관계를 이룰수 있는 나이이다. 그런 안정적 삶에 남편의 사별은 전 우주가 사라진듯한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아름다운 40대 후반과 50대를 보내면서 그녀의 성격은 급해지고 전투적으로 바뀌었고 남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당신보다 먼저 간 남편을 가슴속으로 부르짖으며 자식들의 성공을 기원하였다. 그런 그녀의 기원덕분에 자식들은 사회적으로 성공과 부를 이루어 나갔고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빠의 묘앞에서 소원을 빌곤 했다. 그런 시절을 다 지나고서야 그녀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마흔일곱이라는 나이의 다리를 건너면서다. 나의 나이가 그녀의 나이를 지나칠때마다 나의 가슴속 열기가 뜬금없이 올라온다.


그래서 나는 여름마다 그것도 칠월 칠석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엄마의 나이 마흔일곱이 되어서야 엄마가 아빠를 보내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얼마나 울었을지, 자식 걱정에 얼마나 애가 탔을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칠월 칠석이 다가온다. 그래서 올해 여름도 뜨겁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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