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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

유행보다는 취향을 찾아가는 길

by 구시안




오즈로 향하는 길이 다시 열린 것처럼, 거리는 온통 노란색의 물결이었다






은행나무들이 마치 오래된 황금 비단을 조심스레 풀어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바람 한줄기가 스치기만 해도 잎사귀들은 서로에게 등을 부딪히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도로시가 아닌 토토쯤이 되어 도시에 펼쳐진 오즈의 길을 따라 걸으면 마법사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종로의 온 거리가 노란색의 물결이 들고 있었다.



어떤 잎은 허공에서 오래 머물고, 어떤 잎은 아무 미련 없이 땅으로 곧게 떨어졌다. 빛을 오래 품고 있었던 노란 잎들은 아스팔트 위에 닿자마자 한순간에 거리전체의 온도를 바꿔놓았다. 차갑던 회색 길은 금빛을 덮어쓴 듯 부드러워지고,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들조차 잠시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은 길 위에서 서로를 만나 포개지고, 겹겹이 포개진 그 위에서 사람들의 발자국이 사각거리며 지나가면, 마치 날이 선 고요가 한 번 흔들리는 듯했다. 누군가는 이 풍경을 가을의 끝이라 부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을 한 번 빛내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떨어지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저녁이 물들 무렵 이른 퇴근을 하며 들린 곳은 종로거리였다. 도시의 바쁜 사람들의 손은 이 노란색 길을 찍느라 잠시동안 움직임을 멈추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책인 '무명의 말들' 이라는 책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다. 나는 일기처럼 적힌 그의 글을 좋아한다. 다시 읽기로 하고 가방에 넣어둔 책이 사라졌다.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책을 다시 사기 위해 종로의 큰 책방을 들리기로 했다. 나는 책을 온라인으로 사지 않는다. 직접 만져보고 책장을 넘겨보고 결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서점으로 가는 길, 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자 노란 은행나무잎들이 갑자기 폭포처럼 쏟아졌다. 발끝에 닿는 잎들은 바스락거리며 작은 감촉을 남겼다. 책의 종이를 넘길 때 손끝에서 미세하게 불어오는 바람 같은 기분이었다. 노란 잎들은 햇빛을 받아 반투명하게 빛났고, 하나하나가 작은 조명을 품은 듯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어디선가 오래 묵은 책 한 권이 품고 있을 것만 같은 냄새가 났다. 도시의 소음조차 잠시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다른 계절이 천천히 내 발목에 내려앉는 것을 느끼면서. 이 노란 길을 따라 후지이 다케시를 다시 만나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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