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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OR NO. 얼마나 깔끔하고 간단한 선택지인가

하얀 행성을 바라보다 미술관으로 가다

by 구시안


눈을 다시 감으니 하얀 행성 하나가 멀리 보였다. 알람 시계가 정확하게 울리는 아침이었다. 잠시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어두운 우주 같은 곳에서 하얀 행성하나가 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도 명상 비슷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명치 아래서부터 시작된 콘크리트 공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음의 예산을 넉넉히 세우자 다짐했던 것은 실패했다. 제대로 된 단단한 콘크리트 공사를 시작한 지도 반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라. 하지만 내가 더 현명하다고 상대방에게 말하지 말라. 내가 믿었던 것들 가운데 지금도 믿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고작해야 구구단 정도랄까.... 예전에 확신하고 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지금은 확신이 가지 않는다.



지난밤 노란 메모장에 써 내려갔던 글귀를 책상에 앉아 읽어보았다. 그리고 구겨버렸다. 우리는 가끔 아무런 저항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남에게서 틀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것에 반감을 품고 심지어 생각이 더 굳어진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것을 계속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믿는 것에 의문을 가지면, 예전의 믿음을 지속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죄다 붙이면서 화를 낸다. 그것이 사람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쉬는 날 아침이면 이상하게 일찍 떠지는 눈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이상한 장치가 몸에 설치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AM 6:50분을 깜박거리는 시계를 보고는 잠시 한동안 멍을 잡고 있다가 사우나를 가기로 마음먹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습식과 건식을 오가며 몸에 쌓인 노폐물을 빼내는 작업을 한동안 하고 나서 시원한 냉수마찰로 마무리하니 온몸이 나른하게 피어올랐다. 늘 기르던 수염도 밀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새로 산 청소기를 테스트하고 만족의 미소를 짓고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정비할 것들. 정리 정돈해야 하는 서류나 은행의 볼일이나 일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다가, 일은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니 삼청동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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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54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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