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7일 7일밤 19화

사람이 없는 시간의 미술관

물방울이 아닌 마음의 표면에 맺힌 시간들이었다

by 구시안



물방울이 아니라, 마음의 표면에 맺힌 시간들을 바라보다





일상에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놀이터라고 느끼는 곳. 내겐 미술관이 그런 곳이다. 내가 어른이 되고도 늘 가던 놀이터처럼 자주 가서 보게 되고, 느끼며 즐기는 곳은 미술관이다. 미술은 나의 불안을 해소하는 치유책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답답한 일상에서 잠시 기대어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까. 사람은 잠시라도 편안한 숨 쉴 곳을 찾게 되어 있다. 나에게 미술관이라는 것은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오래전 '푸생에서 마티스 까지'라는 전시에, 도슨트(전시물 해설자)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8개월간의 전시. 그 안에서 수 많은 인파의 물결을 이끌고 다니며 그림들을 설명해 주는 일이었다. 그림을 배우고 보게 되는 모든 것들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방송을 처음 타보고 밀려드는 전화를 꺼버렸던 순간도 기억 난다.



삼청동. 소격동. 서촌. 북촌. 교동은 마치 정해진 산책 코스처럼 좋아한다. 학교를 삼청동 근처에서 다녔기에 어릴 적부터 익숙한 등하굣길 풍경들은 늘 미술관들이었다.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쇼윈도에 걸린 그림들을 길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미술관 쇼윈도에 머물며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뭘 그린 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 것들에 호기심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 가장 아름답게 마치 학교의 빨간 벽돌을 연상하게 하는 경관으로 옷을 갈아입어 버린 이곳은 추억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들락날락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마치 소풍 가는 날의 설렘에 잠을 잘 못 이루다가 아침 일찍 준비하는 아이처럼 미술관을 찾고는 했다. 미술관의 진 풍경은 개 후 사람이 거의 없을 때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나만의 고요한 산책길이 된다.



가장 여유로운 공간의 묘미를 느낄 수 있고 마치 하룻밤 사이에 새로 만들어지고 그려진 공간이 펼쳐진 듯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알레고리의 향연을 미술관에서는 오랫동안 느낄 수 있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고도 늘 보고 싶은 중요한 전시가 생기면 나는 오픈 시간에 미술관의 문을 연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물들어 버린 아침. 생각나는 곳은 미술관이었다. 나는 두꺼운 코트 안에 추상화처럼 번진 반소매 셔츠를 챙겨 입고 사람이 없는 개장 시간에 맞춰 미술관을 찾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48일째 거주중입니다.

40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6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6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8화사람들이 시(詩)를 멀리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