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말라고, 떳떳하라고
혹여나 하고 챙겨 나온 우산이 짐이 돼버리는 순간. 과학도 자연의 변덕은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공원에 앉아 발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절을 그렇게 오래 느꼈음에도 마치 계절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괜한 우울함을 핑계 삼아 못 이긴 척 마신 술이 이른 출근길 아침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날 밤 희뿌연 하현달이 부릅뜨고 뚫어지게 세상을 비추고 있을 때까지 누군가와 나누던 대화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아버리면 손에 들고 다니던 우산은 낯부끄러워 자꾸 얇은 코트 사이로 숨으려 했다. 그렇게 숨는 게 싫어 우산을 버렸다. 숨지 말라고. 떳떳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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