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귀환이다
현실은 언제나 사실의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선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며, 벗어날 수 없는 조건처럼 사람을 설득한다. 월세와 기한, 성과와 비교, 나이에 따른 속도와 포기해야 할 목록들. 현실은 늘 “지금 여기”를 말하지만, 정작 “왜 여기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침묵을 이해해야 하는 쪽은 늘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이 강고해질수록, 인간은 묘하게도 상상을 필요로 한다.
상상은 현실의 반대말이 아니라, 현실이 미처 감당하지 못한 질문들의 다른 형태다. 상상은 도피가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방식이며, 무너진 언어를 다시 세우는 비밀 통로다. 현실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상상은 그래서 비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도 인간적인 저항이다.
우리는 흔히 상상을 “현실을 모르는 상태”로 오해한다.
하지만 상상은 대개 현실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된다. 모든 규칙을 알고, 한계의 윤곽을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현실의 가장 얇은 틈을 찾아낸다. 상상은 그 틈에서 태어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균열,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좁은 문.
현실은 늘 속도를 요구한다. 뒤처지지 말 것, 멈추지 말 것, 생각보다 실행을 앞세울 것. 이 질서 속에서 상상은 가장 먼저 배제된다. 상상은 생산성이 없고, 수치로 환산되지 않으며, 당장의 결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상은 쓸모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쓸모없는 것들로 유지되어 왔다. 쓸모없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마지막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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