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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주의자의 용기

세계를 미화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의 선택

by 구시안


비관주의자는 세상을 어둡게 본다는 이유로 자주 오해받는다.

마치 그들이 희망을 거부하고, 삶을 부정하며, 모든 가능성 앞에서 먼저 고개를 젓는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진짜 비관주의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미화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며, 거짓된 낙관 앞에서 눈을 감지 않겠다는 태도다. 비관주의자의 용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비관주의자는 너무 많은 것을 본 사람이다.

인간의 선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제도가 얼마나 무심하게 개인을 소모하는지, 사랑과 정의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현실과 어긋나는지. 그는 환상을 유지하기에는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버렸다. 랭보가 말했듯, 감각의 무질서 속에서 시야를 얻은 사람은 이전의 순진함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낙관은 종종 폭력적이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현재를 지워버린다. 비관주의자는 그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아직 괜찮아지지 않은 세계 앞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다. 모두가 희망을 외치며 떠날 때, 폐허에 남아 사물의 실체를 기록한다. 그것은 도망치지 않는 태도이며, 가장 고독한 형태의 용기다.



비관주의자의 시선은 냉소와 다르다.

냉소는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지만, 비관은 상처를 감수한 인식이다.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삶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무너진 이후에도 삶을 계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한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공허가 아니라, 더 정확한 현실이다.



비관주의자는 이미 한 번 세계의 내부를 태워본 사람이다.

신, 도덕, 이상, 미래 같은 단어들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경험한 이후, 언어를 다시 배운다. 부풀려진 문장을 버리고, 상처 입은 감각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문장들을 고집한다. 말이 건조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비관주의자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공을 약속받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일, 의미가 보장되지 않은 선택을 감행하는 일. 이것은 낙관주의자에게는 불필요한 모험이지만, 비관주의자에게는 유일한 윤리다. 결과를 믿지 않으면서도 행위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용기다.



삶은 대체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나쁘게 흘러간다.

노력은 배신당하고, 정의는 지연되며, 선의는 오해받는다. 비관주의자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희망보다 단단하다. 그것은 조건부가 아닌 삶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비관주의자의 용기는 환호 속에서 빛나지 않는다.

그것은 박수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며, 종종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그 용기 덕분에 세계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끝까지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누군가는 실패한 자리에서도 인간의 형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비관주의자가 된다.

사랑이 끝났을 때, 신념이 배신당했을 때, 혹은 자신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선택지는 두 가지다. 다시 환상으로 도망치거나, 혹은 비관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거나. 후자를 택한 사람은 안다. 비관은 끝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선택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비관주의자의 용기란 결국 이것이다.

희망이 없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 미래를 약속받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것. 그것은 영웅적인 용기가 아니라, 인간적인 용기다. 그리고 이 시대에 가장 드문 용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희망을 요구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웃어야 하고, 긍정해야 하며, 괜찮다고 말해야만 정상인 것처럼. 비관주의자는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말없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계속된다.



비관주의자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세상이 결코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앎 위에서 선택하는 삶, 그것이 비관주의자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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