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지 않기 위해 매장된 감정들의 내부 풍경
침착함. 이 단어는 늘 잘못 사용된다.
마치 물처럼 맑고, 유리처럼 차가운 상태인 것처럼. 아니다. 침착함은 불길 한복판에서 혀를 씹고 서 있는 행위다. 심장은 난폭한 짐승처럼 갈비를 들이받고, 피는 방향을 잃은 채 소용돌이친다. 분노는 이빨을 드러내고, 공포는 장기를 움켜쥔다. 그 와중에 침착함은 폭발하지 않는다.
침착함은 폭발을 안쪽으로 접어 몸속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는다.
나는 수없이 무너질 수 있었다. 소리를 질러도 되었고, 의자를 걷어차도 되었고, 사람을 찢는 말들을 뿜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침착함은 나를 멈춰 세웠다. 아니, 세운 것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게 각도를 틀어주었다.
침착함은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기술이며, 몸이 먼저 선택하는 본능이다. 모든 감정이 피부를 찢고 나오려 할 때 침착함은 껍질을 두껍게 만든다. 상처는 안에서 곪고, 겉은 조용히 숨을 쉰다. 침착한 인간은 오해받는다. 냉혈, 무감각, 철판. 그러나 그 안에서는 수천 개의 문장이 동시에 죽어간다. 말하지 않기로 한 말들, 지르지 않기로 한 비명들, 부수지 않기로 한 관계들. 침착함은 늘 장례식장을 하나 품고 산다.
감정은 폭약이다.
침착함은 성냥을 쥔 손이다. 불을 붙일 수도 있고, 붙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선택의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침착해질 수 있다. 그래서 침착함은 아름답지 않다. 매끄럽지 않고, 평온하지 않다. 침착함은 피로에 절어 있고, 침묵으로 얼룩져 있으며, 항상 한 박자 늦다. 그러나 그 늦음 덕분에 우리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다. 침착함이란 세상이 나를 부수기 직전,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부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일이다. 그 명령은 늘 조용히, 그러나 아주 잔혹한 주문처럼 내려진다.
침착함이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도록 두는 태도에 가깝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자주 오해를 낳는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고, 다만 흔들림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침착함은 그 차이에서 생겨난다. 나는 오래도록 침착함을 견디는 힘이라고 생각해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무는 것,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하루를 통과하는 것.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것은 침착함이 아니라 긴장이었다. 잠시 버틸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상태. 결국 그 긴장은 다른 방식으로 새어 나왔다. 말투에서, 침묵에서, 이유 없는 피로에서.
침착함은 오히려 힘을 풀었을 때 가까워진다.
상황을 장악하려 들지 않고, 감정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 쪽.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 서둘러 이름을 붙이지 않는 태도다. 분노인지 불안인지 슬픔인지 규정하기 전에, 그냥 그런 기척이 지나가고 있음을 바라보는 것. 그래서 침착함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무심하다고, 차갑다고. 그러나 실은 그 반대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기 때문에, 함부로 반응하지 않으려는 선택에 가깝다. 감정이 충분히 자기 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 그 기다림이 침착함의 실제 얼굴일지도 모른다.
침착한 사람은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상황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하고, 말보다 침묵을 먼저 건넨다.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과잉으로부터 한 발 물러난 자리다. 모든 것을 즉시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합의, 자신과 맺은 작은 약속 같은 것.
나는 이제 침착함을 삶의 기술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윤리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겠다는 태도, 타인의 감정 앞에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결심. 그 결심이 매번 지켜지지는 않더라도, 그 방향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조금 덜 소란스러워진다.
침착함이 없으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살게 된다.
자극에 즉각 반응하고, 상처에 곧장 말을 얹는다. 그러나 침착함이 있는 삶은 한 박자 늦게 움직인다. 그 늦음 덕분에 우리는 덜 다치고, 덜 후회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지지 않는다.
침착함. 이 단어는 피를 속인다.
침착함은 평정이 아니다. 정신이 곧다는 뜻도 아니다.그것은 폭주 직전의 근육, 부러지기 직전의 이빨, 자기 살을 물고 버티는 행위다. 심장은 두개골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피는 방향을 잃은 채 역류한다.생각은 쏟아지는 유리 파편처럼 뇌를 긁어댄다. 그때 침착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혀를 깨물고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폭발을 밀어 넣는다. 말로, 눈빛으로, 침묵으로. 그러나 침착함은 내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마음에서는 사람을 여럿 죽였다. 때리지 말라고, 지금은 죽일 필요가 없다고. 침착함은 윤리가 아니다. 그건 구조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임시 지지대. 모든 감정이 들이받을 때한쪽 벽을 일부러 부러뜨려전체 붕괴를 막는 방식.
침착한 인간의 내부는 항상 난장판이다.
짓이겨진 문장들, 토해내지 못한 비명들, 삼키다 실패한 울음들. 그 잔해 위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쓴다. 이게 위선이라면 나는 위선을 선택한다. 터져서 사라지는 것보다 곪아서 남는 편이 덜 비참하니까.
침착함은 감정을 정리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을 놈만 남기고 나머지를 죽인다. 분노는 질식시키고, 공포는 눌러 앉히고, 슬픔은 말없이 매장한다. 그래서 침착함은 언제나 폭력적이다. 자기 자신에게. 침착한 사람은 하루에 몇 번씩 자기를 패고 지나간다. 그럼에도 이 잔혹한 침착함 덕분에 나는 아직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나도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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