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어둠은 이미 도망칠 준비를 끝냈다. 숨을 죽인 풀잎들 사이로 심장이 먼저 방향을 정한다. 이 사냥에는 총성이 없다. 발자국도, 신호도 없다. 단지 무언가를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감각만이 피부 아래서 몸을 낮춘다. 사냥꾼은 칼을 들지 않는다. 눈을 들고, 침묵을 장전한다. 망설임은 먹이가 되고 연민은 덫이 된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항상 떨림으로 시작된다. 근육이 기억보다 먼저 반응하고 이성은 뒤늦게 이유를 찾는다. 이미 늦었다. 사냥은 생각보다 빠르고 결단보다 앞서 있다. 목표는 이름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얼굴이었고, 기회였고, 한때는 나였을지도 모른다.
사냥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늘 안쪽에서 벌어진다. 숨이 가빠질수록 세계는 단순해진다. 잡거나, 놓치거나. 이분법은 잔인하지만 정직하다. 사냥의 윤리는 언제나 결과 뒤에 도착한다. 마침내 거리가 사라지는 순간. 시간이 접히고 모든 소리가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손은 떨리지 않는다. 이 떨리지 않음이 가장 큰 폭력이다.
사냥이 끝난 뒤 남는 것은 승리가 아니다. 다만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 이전의 속도로는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감각. 강렬한 사냥은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돌아갈 길을 끊는다. 한 번 겨눈 시선은 영원히 낮아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잔인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잔인함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몸 안에 있었다. 피부보다 먼저, 이름보다 먼저. 그것은 교육받지 않았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단지 숨 쉬듯 존재했다. 심장이 뛸 때마다,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타인의 속도가 나와 어긋날 때마다 잔인함은 조용히 근육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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