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의 언어 21화

입 안에 맺힌 열매들

말은 열매처럼 썩는다

by 구시안


사람들 입에는 늘 열매가 맺힌다. 그것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폐와 위 사이, 성대와 기억의 점막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익는다. 언어의 열매는 혀의 근육 운동과 함께 부풀어 오르고, 사회가 남긴 잔여물. 뉴스의 파편, 광고의 냄새, 타인의 한숨을 당분처럼 흡수한다. 아무도 씨를 심지 않았지만, 모두가 수확한다. 말은 그렇게 자연을 가장한 인공물이다.



언어는 씹히기 전에 이미 멍들어 있다. 최초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는 태어나는 순간 오염된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누군가의 귀에 닿기 전, 수십 개의 규칙과 금기를 통과한다. 억양은 검열이고, 침묵은 편집이다. 우리는 말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선택된 말의 통로를 따라 흘러갈 뿐이다. 혀는 자유롭지 않다. 혀는 훈련되어 있다.



도시는 거대한 구강이다.

건물은 이빨처럼 늘어서 있고, 스피커와 화면들은 끊임없이 말을 씹어 뱉는다. 이곳에서 언어는 영양분이 아니라 자극제다. 빠르게 흡수되고, 빠르게 배설된다. 혀의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것들. 사람들은 의미를 음미하지 않는다. 삼킨다. 삼키고 또 삼킨다. 과잉 섭취된 말들은 소화되지 못한 채 내부에 쌓여, 불안과 분노라는 가스로 변한다.



유행어는 돌연변이 열매다. 맛은 강렬하고, 효과는 즉각적이다.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말하며 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개인의 사고는 잠시 중단된다. 언어가 사고를 대신한다. 이것은 편리하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리함은 항상 대가를 요구한다. 반복된 언어는 신경을 마비시키고, 마비된 신경은 질문을 잃는다.



아이들은 아직 덜 익은 언어를 입에 문다. 그들의 말은 종종 서툴고, 그래서 위험하다. 규칙에 맞지 않는 문장, 의미가 어긋난 표현들. 사회는 그것을 교정하려 든다.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야.” 이 문장은 언어의 가지치기다. 불필요한 방향으로 자라려는 감각을 잘라내는 일. 그렇게 아이들의 입에서도 점점 예측 가능한 열매만 맺히기 시작한다.



정치의 언어는 약품 처리된 과일이다. 겉은 윤이 나고, 속은 비어 있다. 단어들은 반복 세척되어 향을 잃고, 대신 안전한 맛만 남는다. “국민”, “미래”, “안정”. 이 말들은 씹을수록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배부르다고 느낀다. 언어는 실제 영양보다 포만감을 먼저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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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72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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