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르네의 말이 다시 몸이 될 때

절뚝이는 시대의 독백

by 구시안

르네는 혼잣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을 통과한 사람들은 말을 아낍니다. 말은 너무 자주 배신했으니까요. 연설은 사람을 살리지 않았고, 약속은 신체를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르네의 독백은 소리보다 먼저 몸에 나타났습니다. 숨의 속도, 시선의 각도, 멈칫하는 손끝. 그러나 어느 밤, 그녀는 마침내 말을 선택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이 시대가 대신 말해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날도 르네의 곁에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녀의 생각이 언어로 변형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르네는 창밖을 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 다리를 전쟁이라고 부르겠죠.”
잠시 멈춤을 선택한 사람처럼 르네는 그렇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멀리 있었어요. 총을 쏜 사람도, 명령을 내린 사람도 아니었죠. 썩어간 건 내 다리였고, 잘려나간 것도 내 몸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무릎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시선은 그곳을 지나온 뒤였습니다. 독백은 과거를 설명하기보다, 현재를 고정시키는 도구니까요.


“검게 변한 다리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습니다.
“이건 시대의 색이었어요. 사람들의 말이 썩어간 색, 선택이 미뤄진 색, 너무 늦게 도착한 정의의 색.”

나는 그녀의 말 속에서, 잘려나간 다리가 다시 언어로 자라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유는 고통을 덜어주지 않지만, 고통을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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