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견뎌야 하는 도시

전쟁 이후의 파리, 그리고 르네의 귀환

by 구시안

전쟁은 끝났다고 불렸지만, 끝남은 언제나 선언일 뿐이었습니다. 르네와 제가 길 위에 올랐을 때, 세계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장처럼 삐걱거렸습니다. 국경은 지도에서만 지워졌고, 폐허는 여전히 사람들의 호흡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방향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려는 시도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저기 거대한 잔해 아래 회색의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있었으니까요.


르네는 한 다리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목발이 그녀의 겨드랑에 끼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핍이 그녀를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의 몸은 이미 전쟁의 언어를 통과해, 다른 문법을 배우고 있었으니까요.


균형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계산이었고,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투명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그렇듯, 세계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그녀의 곁을 걸었습니다. 저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불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더 이상 성인도,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전쟁이 빼앗아간 영혼들 중 하나였고, 그 영혼들이 끝내 말하지 못한 문장들의 합이었으니까요.


길은 조용했습니다. 총성 대신 바람이 있었고, 행진 대신 새들의 방향이 있었습니다. 전쟁이라는 흰 빛은 떨어졌고, 세계를 둘러싼 것은 어둠도 떨 만큼의 상처로 그을린 또 다른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침묵은 말들이 너무 많이 죽은 뒤에 남는 잔해였기 때문이죠.


르네는 가끔 멈춰 섰습니다. 아니, 멈춰 섰다기보다 멈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녀의 옆에서,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르네를 따라다니는 영혼들이었지요.


“우리는 숫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교훈이 아니었다.”
“우리는 필요한 희생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들은 바람보다 낮았고, 기억보다 깊었습니다.

그것은 한탄이라기보다 요청에 가까웠습니다. 기억해 달라는 말조차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무 빨리 의미로 바꾸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르네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길을 서두르지 않았고, 폐허 앞에서 머물지 않았으며, 자기 이야기를 설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힘겹게 목발을 짚어가며 전쟁의 잔해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몇 주 내내 억눌러온 그녀의 가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울음이 없는 자입니다. 함께 울어줄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파리는 환각의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전쟁이라는 기묘한 약은 그렇게 도시 전체를 흐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세계는 다시 이름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우물, 계단, 문턱, 창문. 그러나 그 이름들은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물은 한 번 죽었다가 돌아온 것처럼 조심스럽게 불렸습니다.


르네는 마지막 언덕에서 목발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침묵이 기도라는 걸 알았습니다. 신에게가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에게 바치는 기도.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아직 살아 있다. ”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세계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저는 그녀 옆에 섰습니다. 아니, 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존재했습니다. 그녀의 한 다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리듬 옆에서, 죽은 자들의 시간과 산 자의 시간이 잠시 겹치는 지점에. 그녀의 향기를 읽고 있었지요.


전쟁은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폐허, 죄책감, 역사, 기념비. 그러나 가장 무거운 것은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선택이었습니다.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의미 속에 묻힐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르네는 선택했습니다. 절뚝이며,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저는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다시 상징으로 굳지 않도록. 한 다리가 용기나 교훈으로 환원되지 않도록. 그저, 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남아 있도록. 전쟁 이후의 시대는 여전히 절뚝거리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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