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향기는 짙어만 가고

목발로 걷는 속도

by 구시안



그 다음 날 아침, 파리는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폭격의 흔적을 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러나 씻지 않으려는 의지도 없는 비였습니다. 물은 늘 그랬듯 정치적이지 않았고, 애도의 방향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저 낮은 곳으로 흘렀습니다.


르네는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목발은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녀의 한쪽 다리는 담요 아래 조용히 놓여 있었습니다. 잠에서 깬 뒤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아침은 종종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저는 그녀의 뒤에 있었습니다.
밤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이미 선택을 한 셈이었지요.


“당신은 잠을 자지 않죠.”
르네가 말했습니다.
확인이 아니라, 이제는 대화였습니다.


“나는 시간을 접어 두는 쪽에 가깝지.”
제가 대답했습니다.
“죽은 자들은 밤과 낮을 나누지 않아.”


르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이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해는 언제나 너무 많은 설명을 요구하니까요. 대신 그녀는 빵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습니다. 씹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한 번에 삼킬 수 없는 것들이 아직 많다는 증거였습니다.


밖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르네의 손이 잠시 멈췄습니다.


“저 소리....”
그녀가 말했습니다.
“전쟁 전에도 있었겠죠?”


“그럼. 전쟁 중에도 있었고."


그런데 왜....”

르네는 끝을 맺지 않았습니다.


왜 나는 살아 있고,
왜 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고,
왜 어떤 사람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는지.

말을 맺지 않아도 르네의 마음을 이미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질문은 언제나 살아 있는 자에게만 무거웠습니다.


그날, 르네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용기 때문이 아니라, 방 안에 더 머무르는 것이 위험해졌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물면, 기억이 벽이 되니까요.


거리는 여전히 불균형했습니다.
새로 열린 카페 옆에 무너진 건물이 있었고, 웃음소리와 절규의 흔적이 같은 공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파리는 회복 중인 도시라기보다, 여러 시간대가 동시에 붕괴되고 있는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르네는 오래된 서점 앞에서 멈췄습니다.
유리창은 새 것이었지만, 간판의 글씨는 전쟁 이전의 것이었습니다.


“여기....”
그녀가 낮게 말했습니다.
“내가, 자주 오던 곳이에요.”


“들어가 볼래?”
제가 물었습니다.


르네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직은요. 아직은, 과거가 너무 말을 많이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망이 아니라 거리 조절이었으니까요. 살아남은 자가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기술.


그날 오후, 르네는 센 강을 다시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동 식량 배급소에 들렀습니다. 줄은 길었고,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시선은 갈등을 부르기 쉬우니까요.


한 노인이 넘어졌을 때,
르네는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목발이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고,
그녀의 몸은 잠시 균형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르네는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상징이 아니라,
교훈이 아니라,
단지 지금 여기에 필요한 손 하나.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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