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도 쉬어야 한다

쉬지 않으면 고장난다. 멈추지 않는다는 강박

by 구시안

우리는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이미 트랙 위에 그려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인간이기 전에 번호표를 단 존재가 된다. 출발선은 보이지 않지만, 채찍은 분명하다. 성적, 연봉, 속도, 효율. 우리는 달린다. 왜 달리는지 묻기 전에 이미 숨이 가쁘다.



나는 한때 자유가 방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그러나 곧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멈출 수 있는가였다. 경주마에게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지구는 둥글기에 트랙은 원형이고, 결승선은 다시 출발선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오직 속도뿐이다. 더 빨리, 더 오래, 더 지치지 않게.



망할 철학자들은 인간이 자유롭다고 말했다. 여전히 우리는 자유롭지 못해서 달리기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망할 철학자들은 동시에 그 자유가 형벌임을 알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흑과 백이 공존하는 철학은 언제나 기묘한 일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이 문장은 오늘날 이렇게 변주된다. 우리는 달릴 수 있지만, 달리지 않을 자유는 없다. 멈추는 순간, 우리는 탈락자가 된다. 의미를 묻는 자는 뒤처진 자가 되고, 질문은 변명으로 취급된다.



경주마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은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삶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사치로 배운다. 대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괜찮음은 위대한 마취제다. 고통도 없고, 기쁨도 없다. 다만 지속 가능한 소진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서 피로보다 더 깊은 것을 본다.

그것은 의미의 결핍이 아니라, 의미를 묻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묻는 순간, 멈춰야 하고,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속도를 높인다. 생각보다 빠르게, 양심보다 먼저. 그러나 인간은 경주마와 다르다.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지만, 인간은 이유를 묻기 위해 태어났다. 이 차이를 지워버릴 때, 우리는 성공한 존재가 아니라 길들여진 존재가 된다. 자유를 포기한 대가로 안정을 얻고, 질문을 포기한 대가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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