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의 언어 30화

밤의 언어가 사라진 자리

번역되지 않는 감정들의 도시

by 구시안

밤의 언어는 말을 잃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낮 동안 사용되던 문장들이 모두 탈진해 바닥에 눕고 나면, 밤은 그 잔해를 주워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한다. 의미는 더 이상 직선으로 이동하지 않고, 냄새처럼 번진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정확해지는 시간, 밤은 그렇게 언어를 변질시킨다.


도시는 밤이 되면 다른 문법을 가진다. 낮에 서로를 찌르던 말들은 철회되고, 대신 불완전한 소리들이 골목에 남는다.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 먼 데서 울리는 경보, 누군가의 웃음이 갑자기 끊기는 지점. 이 모든 것은 문장이 아니지만,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말을 잃은 사람들은 밤에만 정직해진다. 그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변명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한다. 찰스 버로스식으로 말하자면, 언어는 이 시간에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문법은 붕괴되고, 금지된 생각들이 슬쩍 고개를 든다. 검열은 졸고 있고, 의식은 느슨해진다.


네온은 과도하게 빛나고, 그림자는 과도하게 길어진다.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우친다. 감정도 그렇다. 사랑은 중독처럼 달라붙고, 혐오는 이유 없이 증식한다. 사람들은 낮에 하지 못한 말들을 밤의 몸속에 숨긴 채 걸어 다닌다. 말은 사라졌지만, 의미는 더 무거워졌다.


누군가는 밤을 안전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밤은 인간의 내부를 확대한다. 억눌린 충동, 미처 소화되지 못한 분노, 이름 붙이지 못한 욕망들이 이 시간에 자유롭게 떠다닌다.


거리에는 대화 대신 잔상만 남는다. 스쳐간 눈빛, 닫히지 않은 문, 켜진 채로 방치된 휴대폰 화면. 그것들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낮의 언어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했다면, 밤의 언어는 침투한다. 서서히, 거부할 틈 없이.

이 시간에 쓰인 문장은 대개 끝나지 않는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멈춘다. 마치 생각이 아니라 상태처럼. 밤의 언어는 전달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에 가깝다. 누군가가 여기 있었다는 것,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끝내 말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


그래서 밤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피로를 느낀다.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낮의 언어를 꺼내 들고, 모든 것을 정리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밤은 흔적을 남긴다. 지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밤의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번역되지 않을 뿐이다. 말이 잃어버린 자리에서, 의미는 계속 숨 쉬고 있다.






밤의 언어가 지나간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다. 다만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검은 언어가 하얗게 꽃을 필 줄 알았다. 어둠이 충분히 깊어지면, 그 속에서 어떤 순결이 솟아오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밤은 정화하지 않았다. 밤은 축적했다.


말들은 밤에 검어졌다. 낮에는 의미였던 것들이 밤에는 찌꺼기가 되었다. 쓰이지 못한 문장, 삼켜진 고백, 끝내 발음되지 않은 이름들이 어둠 속에 겹겹이 쌓였다. 그것들은 썩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다만 무게를 가질 뿐이었다. 검게 물들은 잎들이 모여 하나의 성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착각했다. 침묵이 지나가면 무언가가 해결될 거라고. 말하지 않으면 상처도 남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밤의 언어는 말이 없는 대신, 더 직접적으로 몸에 달라붙었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은 형태를 바꾸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곧 태도가 되었다.


검은 언어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것은 번졌다. 벽에 스며들고, 피부 아래로 내려가고, 생각의 결에 얼룩처럼 남았다. 아침이 오면 사람들은 그 얼룩을 보지 못했다. 빛은 언제나 선택적으로 비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순백이 아니라, 희미한 회색이었다. 무언가 끝난 듯 보이지만 끝나지 않은 상태. 말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진행 중인 감정. 언어는 실패했지만, 실패한 언어조차 흔적을 남겼다.

도시는 아침마다 다시 말을 배웠다. 기능적인 언어, 안전한 문장, 책임을 최소화한 표현들. 그러나 밤의 언어를 통과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낮의 말들이 얼마나 얇은지, 얼마나 쉽게 찢어지는지. 그들은 말 속에 살지 않고, 말의 틈에서 살았다.


검은 언어는 하얗게 꽃피지 않았다. 대신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삶을 바꾸었다. 관계의 온도를 낮추고, 신뢰의 반경을 줄이고, 침묵을 하나의 전략으로 만들었다. 밤은 언제나 그렇게 작동한다. 드러내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러나 확실하게.


밤의 언어가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무엇인가가 숨 쉬고 있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 말이 되기를 거부한 것들. 그것들은 꽃이 아니라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 위에서 사람들은 다음 날의 문장을 조심스럽게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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