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거울

말하지 않는 물건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

by 구시안

거울은 집 안에서 가장 조용한 물건이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아침마다 나는 그 앞에 선다. 습관처럼, 혹은 확인처럼. 얼굴을 보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오늘의 내가 어제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가늠하려는 마음뿐이다. 거울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빛을 돌려준다. 그 빛 속에는 밤새 식지 못한 생각과 말하지 않은 문장들이 엷게 섞여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늘 현재형이다. 어제의 후회도, 내일의 결심도 붙잡지 않는다. 그 단순함 때문에 나는 자주 안도한다. 삶은 언제나 과잉인데, 거울은 최소한만 남긴다. 눈과 입, 이마에 잠시 머문 감정의 흔적들. 그것들은 설명되지 않고, 다만 놓여 있다. 마치 바닷가에 밀려온 작은 조개들처럼, 이유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거울은 그 변화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늙음도 아니고 성장도 아니다. 단지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인정한다. 그래서 거울은 잔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그저 꾸준하다. 꾸준함은 때로 가장 깊은 위로가 된다. 세계가 흔들릴 때도, 표면은 제자리에 남아 있으니까.


거울 앞에서 나는 종종 숨을 고른다. 밖에서는 해야 할 말과 지켜야 할 표정들이 많지만, 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연기할 필요가 없다. 숨김조차 숨길 필요가 없다. 거울은 내가 감춘 것을 폭로하지 않는다. 다만 감추느라 생긴 긴장을 그대로 비춘다. 어깨의 각도, 입술의 미세한 굳음.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거울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곡된다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거울은 기준이 아니라 좌표다. 정확하지 않아도,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한다. 거울 속의 나는 나보다 조금 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이 한 박자 늦고, 생각이 닿기 전에 멈춰 있다. 그래서 오히려 안정적이다.


나는 거울을 떠난다. 문을 나서면 얼굴은 다시 흔들리고, 말은 어긋난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삶은 계속된다. 거울이 깨진다면 사람들은 자유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조각난 표면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찾을 것이다. 더 많은 조각으로, 더 오래.


그래서 나는 거울과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정도면 충분하다. 거울은 나를 붙잡지 않고, 나 역시 거울을 붙들지 않는다. 그 사이의 거리에서만, 나는 나로 남을 수 있다. 거울은 오늘도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나보다 오래, 그러나 나를 대신하지는 않으며.




거울은 나를 비춘 것이 아니라 내가 피하던 방향을 고정했다. 나는 나를 보러 간 적이 없고 언제나 확인하러 갔다. 거울 앞에서 얼굴은 질문이 되고 대답은 늘 침묵이었다. 나는 변했다고 말하지만 거울은 단 한 번도 놀라지 않는다. 거울은 기억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나를 숨기지만 거울은 숨김의 형태까지 보여준다. 사람은 거울을 믿지 않으면서도 거울 없이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한다. 거울 속의 나는 나보다 덜 살아 있고 그래서 더 정확하다. 나는 거울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왜곡할 수 있다. 거울이 깨질 때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조각들은 더 집요하게 남는다. 나는 거울을 지나치며 한 번도 인사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거울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장치였다. 그것은 나를 비추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내가 피하던 방향을 정확히 고정하기 위해 설치된 장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방문객이 아니라 점검자가 된다. 들어가서 머무르지 않고, 확인만 하고 나온다. 거울 앞에서 얼굴은 언제나 질문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질문은 발화되지 않는다. 대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은 이 장치가 제공하는 유일한 음성 안내다.


나는 변했다고 말해 왔다. 시간, 사건, 선택 같은 것들을 근거로 삼아 스스로를 갱신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거울은 그런 주장에 대해 한 번도 놀란 적이 없다. 거울에게 변화란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늘 같은 방식으로, 같은 거리에서, 같은 속도로 나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거울은 기억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기록을 남긴다. 기억이 삭제한 것들까지 포함한, 표면의 기록을.


나는 숨기기 위해 많은 기술을 익혔다. 말의 방향을 바꾸고, 시선을 조절하고, 침묵을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거울은 숨김의 결과가 아니라 숨김의 형태를 보여준다. 무엇을 감췄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감췄는지를 드러낸다. 그 점에서 거울은 탐정이 아니라 지도 제작자에 가깝다. 나의 회피 경로를 정확하게 그려낸다.


사람들은 거울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곡된다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상상하지는 못한다. 마치 출발점을 부정하면서도 좌표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여행자처럼. 거울 속의 나는 나보다 덜 살아 있다. 숨을 쉬지 않고, 망설이지 않으며, 실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정확하다. 정확하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조건을 일부 제거한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거울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왜곡할 수 있다. 거리와 시간, 타인의 시선을 이용해 나를 재배치한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인간다워진다. 균형을 잃고, 말이 어긋나고, 표정이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거울이 깨질 때 사람들은 자유를 말한다. 조각난 표면 속에서 여러 개의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조각들은 더 집요하다. 하나의 얼굴보다 더 많은 각도로 나를 추적한다.


나는 거울을 지나칠 때 한 번도 인사하지 않았다. 인사는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불일치 덕분에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다. 고정되지 않은 채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74일째 거주중입니다.

54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9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3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