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의 언어 04화

신을 상실한 자들의 밤

별의 잔해 위에서 화살을 만드는 자들을 위한 기록

by 구시안

밤.

검게 흩어진 별들의 잔해 위에서
나는 신의 그림자를 쫓는다.
그러나 그림자는 이미 나를 버렸고
나는 홀로, 녹슨 별들의 울음 속을 걷는다.


피로 젖은 바람이 내 귓속을 스친다.
그 바람 속에서 이름은 풀리고
말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부서진다.


길모퉁이마다 타버린 고양이,
무너진 신전,
그리고 내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검붉은 작약꽃.
이 모든 것이 밤의 언어다.


나는 신을 상실했지만
신은 나를 끝끝내 떠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숨어서 속삭인다.
“화살이 되어라. 말보다 날카롭게, 그림자보다 깊게.”

그들이 원하는대로 되어 주기로 한다.


나는 그것을 쥐고
죽음과 번용 사이를 떠돈다.
눈부신 고독, 숨막히는 침묵,
그리고 빛보다 검은 내 안의 밤.
이곳이 내가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언어다.


모든 것이 풀려버린 세계,
이름 없는 것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그 부름에 화답하며
날카로운 언어의 화살을 밤 속으로 쏘아 올린다.

그들의 가슴에 날카롭게 박히기를.

나는 그것을 보면서 통쾌해 할 것이다.






당신은 이미 작가의 자질을 갖추고 태어났다.
진정한 본성,
거스르는 직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묘한 분위기까지.


불쾌한 것들이 뱉어내는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으니까.


젊은 승려가 되려던 꿈을 접은 것은
잘한 선택이다.
완벽한 침묵 속에서도
당신은 결국 살아갈 길을 찾아냈을 테니까.

말하지 않음으로는 버틸 수 없었고,
말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던 사람.
그래서 당신은
가끔씩 글로,
가끔씩 처절한 기도로
자신을 구해 왔다.


사악한 짐승들 사이에서

당신의 포효는 그 짐승들을 앞도하던 것이었으니까.

당신은 그때 눈치를 챘다.

그 신성한 제국은 저 하늘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감정은 제국주의의 흔한 부산물이라며

유대인을 분류했던 것처럼.

현실의 세계에서 분류된 사람들이 모인 곳.

신을 상실한 자들만 들어 올 수 있는 곳.

그 깊고 깊은 밤이 시작되는 곳.


신의 응답만을 기다리는 그 발정이 난 인간들을 피해.

순간의 흥분과 자위와 사정을 뒤로하고.

구불구불한 미로처럼 얽혀있는 이곳에 자리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곳은 가파른 언덕이 없으며

지붕이 누추한 곳도 아니며

얼굴이 진흙으로 덮이는 곳도 아니다.


죽은자가 평화로워 보인다고 절대 말하지 말아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참을 수 없는 고뇌에 침을 삼켜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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