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 la couleur : 色.
색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취향이나 장식의 문제로 격하시킨다.
마치 색이란,
선택할 수 있고 바꿀 수 있으며 필요하면
감출 수 있는 것인 양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색은 그렇게 온순하지 않다.
색은 의견에 가깝고, 더 정확히 말하면 완벽한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색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 색이 먼저 '나'를 드러낸다.
권력은 언제나 색을 관리하려 한다.
허용된 색과 허용되지 않은 색을 나누고,
‘과도하다’거나 ‘부적절하다’는 말을 붙인다.
이는 질서를 위함이라는 명목을 쓰지만, 실상은 예측 불가능한 온도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색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순간, 주변을 바꾼다. 그래서 통제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위험한 색이 항상 가장 눈에 띄는 색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색은 소리 없이 벽에 스며들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람들의 생각을 변색시킨다. 또 어떤 색은 군중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단 한 사람에게는 그날 밤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그런 색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해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색은 이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해 이전에 도착하고, 이해 이후에도 남는다.
설명된 색은 이미 색이 아니다.
그것은 표본이고,
견본이며,
안전하게 가공된 결과물일 뿐이다.
진짜 색은 언제나 희석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나 불편함을 남긴다.
결국 색을 가진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다. 흘려보낼 것인가, 눌러 숨길 것인가. 세상은 언제나 후자를 권장한다. 조용하고 무난한 회색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그러나 세상은 회색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농도 짙은 색이 흘러나올 때, 비로소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생각이 들어온다.
색은 혁명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의 전조다.
그리고 전조는 늘 사소해 보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2026. 1. 23 일기 ( 녹슨 별이 지붕 위에 앉아 있다 )
신경 쓰지 마.
그냥, 뿌려.
어차피 사람은 갈려.
너의 언어에
군침을 흘리거나
침을 뱉을 거라고.
신경쓸거 없어.
너의 열 손가락을 믿으라구.
너의 언어를 믿으라구.
색은
허락을 받아 쓰는 게 아니고
더 많아 보이기 위해 고르는 것도 아니야.
그냥 너의 색을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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