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더 넓다는 사실

어둠 속에서 발견한 빛

by 구시안

봄이 풍요롭다.

대지가 부풀어 오른다.

하늘은 벌판에 넘쳐흐르고 있다.

배처럼 구부러진 풀 위로

이슬이 꽃 피우려 애태우고 있다.


수정 구슬처럼

나는 밤과 섞인다.

소멸의 순간 어찌할 수 없는

추락의 은밀한 움직임을

관찰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은 없다.


어느 날의 밝은 첫날의

첫 번째 깃털을 떨구며 날아가는

어린 새를 기억해 본다.


그 힘찬 씨앗의 비상.

땅에 머리를 박은 말없는

나무의 비상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새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풀잎들이 불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긴 밤을 보내는 그 나무를 상상해 본다.


서로에게 부끄러운 알몸으로 벗겨져도 괜찮은

그 숲에 자리한 나무를.


그 나무들은

모두 자신만 보기를 약속한 것일지도 모른다.


빛을 붙잡기 위해

나무의 껍질로 바구니를 엮는 거친 손은

밤의 짐승 같은 잠을 쫓으려

마법의 씨앗을 삼키고 침묵을 부른다.


가장 작은 이름.

가장 고요한 이름.


긴 밤에 오를 계단을 택해야 하는 시간.

안개의 계단을 오를지

신들을 향한 합창이 가득한

화려하고 밝은 하얀 계단을

오를지 결정하지 못했다.


밤이 물드는 대지는 가슴을 조이고

이미 또 하루가 탄생했다.


밤의 하늘이 더 넓다라는 사실이

낮의 그림자에 묻히고

타고난 밤과 그 공포를

무력한 기름이 묻은 무거운 손과 함께

책상에 올려진 열 손가락을 바라본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내 크기에 맞춰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하는 수많은 나의 이미지가

나의 빛을 늘려 간다.


수많은 똑같은 시선이

공평하게 살을 나누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와 섞이는 것.


물과 불은 단 하나의

계절을 위해 벌거벗고

세상의 이마 위에서

일식처럼 보이기 시작하며

물들기 시작한 하늘의 색이

묘하게도 아름답다.


꽃핀 그 첫 번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까.

사람들의 입술과 입술이

마주 하고 나누는 대화가

향기로울 수 있을까.


넘치는 새벽에

하늘에 끼어 사는 이끼들의 정상에서 사는

작은 새 한 마리 정도로 생각해버리고 만다.


무용해지는 꿈들의 연속에서 살아가며

베일도 없고

비밀도 없지만

내밀한 이유를 지닌

쉽게 얻은 내 삶의 온갖 힘이

편안하게 숨을 쉬는 시간.

자유로운 가슴이

창 밖의 거리를 영원함과 뒤섞고 있다.


아직 매력이

유일한 사랑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는 도시.

낮은 철책 너머로

마지막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

손잡고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지만,

존재의 확신을 지닌

더 평범한 탄생 쪽으로 눈을 돌린다.


나는 항상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아니다.

마지막의 차례여도

좋은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삶은 나를 이끌어 주고 있고

내 안에 있는 두려움만 빼고

나의 잿가루만 빼고

모든 것을 나누는 나를

나 자신과 갈라놓는 날을 위해

내 안에도 존재하는 낮지만

넘기 힘든 철책 너머를 향해

시선을 두고 그곳을 바라보며

사는 일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러운 밤.

무리를 인도하는 고정된 가로수를 이루고 있는

나무들조차도

이제 밤의 형체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달빛이라는 샹들리에의 줄을 타고

머릿속에 단어들은

높은 곳에서 어른거릴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뱃머리의 시선을 지닌 나무

누군가에게 숭배되는 나무조차도

자신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들도 세상에는 존재하니까.

그런 운명들도 존재하니까.


말하는 것이

누군가를 껴안는 것만큼

너그럽기 위해

써 내려가는 모든 것들이

격렬하게 춤추는 광대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가 가진 재산이 이것이라면

내 권리를 마음껏 주고 싶은 밤이다.


나의 과거

나의 현재

아직 오지 않는 미래

이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백의 고백을 거듭하다 보면

비치는 모든 것이

빛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의 빛이 더 밝다는 사실을.

밤이 낮보다 더 넓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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