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파도 소리

어제를 느낄 수 없는 인간이 새벽을 걷는 시간

by 구시안

산다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제 느낀 것을 오늘도 느낄 수 없다.

그저 어제를 기억하는 것이지 느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새벽은 세상을 처음 맞는 새벽이다.

수많은 눈알 같은 유리창을 통해 아직도 켜져 있는

밝아오는 빛이 데려온

건물들의 모습이 노란빛이 섞여

분홍색이 되어가다가 흰색이 되어가는

이런 시간.

이런 빛.

이런 나의 존재를 느끼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내일의 모습은 또 다를 테고

내일 새로 만들어진 눈으로

새로움이 가득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살게 만들었던

모든 생각과 사람들이 죽게 만들었던 감정이

마치 역사의 어두운 요약본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모든 시대의 열망 때문에

나 홀로 내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신음들이

모든 시절의 불안이 새벽의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를 거닐듯 느껴지며

또 다른 사람들의

이루지 못한 것들을 들여다보거나

이루기 위해 죽였던 것들을 알게 되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가녀린 영혼들의 독백을 읽어본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면서 감상에 젖어

밤의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적절하지 않은 시간이나 놓쳐버린 감정 속에서

그저 미소나 기회로만 남아 있던 것.


거칠게 휘도는 파도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이 모든 것과 함께 잠재운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시간 속에

마치 연인이 서로에게서 낯설게 여겼던 것처럼.

밤의 파도소리는 밤의 소리일 뿐이다.


인생은 빠르고 슬프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어둠 속에서 희미한 거품처럼 흩어지고 마는

영원한 희망처럼 들렸던 것들.

원하는 것을 얻은 자들이 흘린 눈물과

원하는 것을 이룬 자들은 어떤 눈물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를.

밤과 심연이 내게 털어놓는 비밀들.

그것들을 적어놓은 노트들이

책장에 쌓여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잠시 기타를 튕기다가

그 소리를 접는다.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깨어 있는지

감정이 넘쳐 자신을 되찾는 바닷가에

얼마나 많은 스스로가 적어 내려 가는

독백들이 많았을지 알 수 없다.


잃어버린 것들

찾아야 하는 것들.

실수로 인해 얻었고

만족했던 것들.

사랑했고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들.

느꼈던 것인데

그저

생각했다고 믿었던 것들.

밤의 거대한 밑바닥에서부터

파도가 아닌 잔물결로 부서질 때까지

이어지는 심연의 밤 속에 남아 있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똑같은 운명을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드는 밤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

세상은 수많은 음악을 경험하게 하지만

내 자체가 소리 낼 수 있는 것은

그 음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길게 누워버리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목청을 높이는 것처럼

파도는 음표처럼 그 높낮이를 달리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요한 해변에 자신의 심장 박동소리만이

들리는 시간.

육체 없이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밤을 떠돌게 될 것인지

알고 싶지는 않아 졌다.


밤의 산책길

밤의 바닷가

걷게 되는 해안이 시끄러웠다가

비웃다가

울부짖었다가

이윽고 고요하게 가라앉게 될 때

나의 현실의 풍경처럼

내가 꿈꾸어 왔던

꿈속의 풍경들을 선명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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