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이 사라진 자리

도시의 소음 속에서 시작된 하루에 대하여

by 구시안

소년의 휘파람 소리가 끝날 때쯤, 위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말려 두었던 검정 우산을 펴고, 무표정으로 줄이 이어진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의 금속성 신음에 하루를 시작한다. 교차로에서 들리는 소리들의 뒤섞임,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와 침묵을 유지하는 뒤죽박죽의 소리 어디쯤.


굼뜨게 움직이는

지하철을 돌아다니는

어떤 발소리

말소리의 시작과 중간과

그 끄트머리.

귓가에는

어느 소년의 휘파람처럼 느껴지는

반복 중인 노래가 흐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자리가 아닌

풀이 무성한 숲을 비집고 나온

이름 모를 짐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노동의 시간이 시작되면, 테이블에 뭐가 하나 빠졌다고 부리는 짜증들의 소리들이 카운터 사랍장에 넣어놓은 담배를 달라고 재촉한다. 누군가의 손짓에 움직이는 두 발이 날렵하게 다가가 형식적인 미소를 짓고, 일상의 주어진 공간에 시간이 마르기를 기다리다가,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직시하며 사뿐히 걷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게 매장을 잠시 빠져나와, 하늘을 한번 바라보며 피우는 담배를 한숨에 섞어 뱉어낸다. 잿빛으로 바뀐 빗줄기가 더럽다고 생각하진 않기로 한다. 내리는 비도 단어를 조각해 줄 것이다. 곱지만은 않은 단어일 테지만, 나를 후려친 것은 아침부터 비였기에 이왕이면 사이좋게, 비가 그칠 때까지는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로 한다.


인사를 어둠과 바꾸면서

일과는 시작된다.

사람들.

그리고 또다시 사람들.

단어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짐승들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나를 잡아먹지는 않는

그저 사람일 뿐이다.

하늘은 감각의 무덤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뿐이고, 서로 다투는 듯 내리는 비는

여전히 투명한 창을 흘러내리며

시비를 가리고 있다.


잠시 주어진 시간 상상을 하고, 이런 목적을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추구하며 살고 있는 비루한 목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비루한 인생을 살아가기에 모든 한순간에도 비루하고, 거의 모든 고통의 순간에도 비루하다.


낮에도 들어가는 검은 숲에 자리한

심연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의 머리칼을

하나씩 풀어줄 때마다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낮에는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퉁퉁 부은 손가락이 말해주고 있다.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바깥에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머리 위로 올라와서 퍼지고 흐르는 소음들을 내 무관심의 필터로 걸러서 듣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서둘러 달리는 자동차들의 성급함이 내는 도시 안에 가득한 바퀴 긁히는 소리는 방향을 돌릴 때 가장 커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합리적인 추론도 꿈처럼

내 마음대로 하는데,

이것 역시

다른 종류의 꿈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오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누군가 밥을 먹으면서

잠자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지표를

비슷하게 걸어놓은 사람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지막 비가 하늘을 떠나면,

하늘은 깨끗하게 그 하얀 치아를 드러낼 것이다.


땅은 축축해서 거울처럼

빛나게 만들 것이다.

비 온 뒤의 신선한 물기를 즐기는 일도

삶의 눈부신 청명함이 허락 없이

비출 때면

늘 마음에는 신선함을 잠시 남겨 놓는다.


마치 잡다하게 섞인 것 같지만,

하나로 단단하게 모여 있는 군중처럼

가끔 사람들도

단 하나의 그림을 투사하는 능력을 부리니,

얼마나 공평한 일인가.


건물 사이로 빛과 그림자

혹은 빛과 그보다 약한 빛이

교차하는 시곗바늘의 휘둘림 속에

도시 위로 펼쳐지고 있다.


비는 그치고 햇빛은 벽과 지붕에서

숨어 있다가 떨어져 나오듯

사방의 거울을 비춘다.


그 광경을 볼 때면

아주 잠시 커다란 희망처럼

솟아오를 때가 있다.

아주 잠시 부는 휘파람처럼.





Le rêve de Julie :


"줄리의 꿈"이라는 곡입니다.

잠시 5분의 여유를

음악에 기대어 봅니다.

비가 내리는

고요한 하루 되시길 바라며.

화, 일 연재
이전 02화비의 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