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나의 방식에 대하여

무지(無知)의 선물

by 구시안

삶 자체에 대한 감사 외에 내가 잘 이야기하지 않는 신에게 한 가지 감사할 것이 있다면, 시간 속에 무지(無知)라는 선물을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무지와 서로를 모르는 무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우물을 퍼다 올리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감사하고 있다. 가장 행복한 이들은 가신의 좌절된 욕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일 것이다. 퉁명스러운 모욕으로 인해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악마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언어의 표현을 요정의 날갯짓 같지 않은 행동을 해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기에.


행복사이를 흘러가는 오해이며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누리겠지만,

생각하고 느낄 때조차도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능력 덕분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과 집중을 기울여 문장론을

습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모호함은

비밀의 일부이면 될 테니까.

고차원 적인 마술을 배울 필요가 없듯이

아직까지도

나는 신의 언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무엇이 우아하고

진리이며

무엇이 유려한 글쓰기를 말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세월의 수련과 노력과 체화된 것들이

만들어 내는 것을 나열하면서도

신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영혼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다.

한 줌의 노력을 기울 힘은 남아 있기에

기본적인 바탕을 갖추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진실을 기록하는 일을

놓을 수는 없다.

스스로에게만은

위대할 필요가 없으니까.

우월해서 괴짜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니까.

여전히 사상은 우월하지 않아도

고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꾸며내는 사랑을 할 필요가 없는

언제나 아름다운 미소만을 머금고 있을 수 없는

누군가의 따듯한 시선만을 받으며 살 수 없는 조건이

걸린 곳이기에,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대하며, 헤아려 보게 된다. 그 누구도 아닌 타인이 모르는 마음을 하나 헤아려 보며 가는 길이 외롭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돈에 팔리는 관계는 잇고 싶지 않은 것이 지금의 마음이다.


언제나 배우였지만 정직하게 연기했다는 이유로 사면될 수 없는 사건들은 살아오며 많았다.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을 꾸며도 봤고,

괜찮다고는 말로 넘어가고는 했던 마음의 흠집들이 그렇게 시간 속에 불타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나 자신에게도 정말 그런 척을 했다면, 타인에게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나는 관계를 멈춘 것이다.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오히려 고요한 바다의 선율이 되어가는 일상을 경험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어 갔다. 나 자신의 정체를 폭로한 불길한 불빛은 그 위에 있는 하늘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존재할 힘을 빼앗겨 버린 것처럼. 꿈속에서 마신 공기 중에만 떠돌다가 존재해보지도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텅 빈 구멍을 둘러싼 무한한 바다의 움직임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흐른다고 말하기보다는 돌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지도 모르는 이 바다에 살아가면서, 책과 음악, 그리고 그림과 사진만을 좋아하며,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모든 것의 중심을 만들어갔다. 유일한 현실이자 모든 것이 늘 내 곁에 자리하여 헷갈리지 않도록, 지금의 삶에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불가능한 회전 속에 자리를 찾아 움직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지금도 여전하다.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근무 시간에도 구름이 하늘에 나타나듯 갑자기 드리워지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려 애쓴다.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생태에서도 연결되는 명백한 원인을 둔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매일 나에게 전해지는 편지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것을 읽어야만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도, 갑자기 권태가 덮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태우거나 숨기지 않고, 그 봉투에 들어 있는 것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삶을 향한 창가에 기대선 지친 영혼이 읊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바람에 그릠을 흐릿하게 만들어 내고 싶지는 않기에. 느끼고 바라보고 그것에 답장을 써보고 하며, 색을 칠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자하로 향하지 않게

울리는 말의 메아리가 이상적으로

울려서 되돌아올 수 있도록

그것을 들을 수 있도록

원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인데

원하게 만드는 일에

수반되는

그 메아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고통 없이

고통스럽고

욕구 없이

원하고

이성 없이

생각하고

부정적인 악마에게

사로잡힌 듯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홀리는 날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들을 물리 칠 수 있는 마법사나 요정이 될 수가 없고, 사악한 마술이 내게 반영되는 어느 날에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도망가거나, 피하거나 하지 않는 조건이 붙어버린 것처럼. 그 마술은 이상하게도 나의 그림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자신처럼 정체돼 있고 더러운 물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고립을 둘러싸고 있다. 바늘로 찌르 듯 노란색의 메모지에 단어들을 써보면서도 그 단어는 누군가가 팔아버린 것만 같은 날이 있다. 그런 존재가 사람이 아닐까.


사회적 의무라고 하는 것을 이행하며 살아가는 동안에 그 중간에 쓰라린 무기력이 나의 영혼을 채우는 것만 같은 시기가 찾아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지겨운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거나 공허한 느낌처럼 봄이면 식욕을 동반하지 않는 혀가 반항을 하는 것만 같은 시절에 뇌와 위장에 느껴지는 감각만큼이나 고상하지는 않은 것이 하루라는 이름의 것이었다.


침묵의 밤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텅 빈 길밖에 감지할 수도 보이지도 않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이라는 것이다. 과식을 했을 때의 느낌처럼 속에 무엇인가 꽉 차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존재하지만

이미 열 손가락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이런 이상한 시간에는 나의 물질적인 삶뿐 아니라 도덕적인 삶마저 단순한 부속물처럼 여겨진다. 누구도 정해주지 않는 나의 의무뿐 아니라 존재마저 등한시하게 되고, 이 우주 전제가 피곤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는 것과 꿈꾸는 것이

똑같은 무게로 눈꺼풀을 누르는 가운데 나무 아래에 누운 모든 거지들의 낮잠 자는 모습이 드리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상 위에서 책을 한 권 집어 들자마자 사라져 버리고, 책을 읽는지 실제 행위는 읽고 싶다는 모든 욕구를 없애고 잇다.


독서는 그저 다른 모든 것과 같다.

말없이 흘러가는

일이 일어날 때면

펼쳐지고

닫아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나그네 같은 나의 일상.

그리고 잠들지 못한 자의

불면증 같은 나의 꿈이다.


이 모든 것이.







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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