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름다운 것

흐르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순간들

by 구시안

윤곽 없는 내부의 조각.

밤에 이루어지는

달빛이 긴 머리를 감는 듯

아름다운 머리칼을 드리우는 밤.

누군가가 매끄럽게

빗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은은한 달빛이 주는 기운에

어쩌면

혼자만의 영적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게 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만,

딱히,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부단한 예술적 열망이

나의 현실 감각이 사라져 버린다.


푸른 달빛 아래 꿈같은 궁전의 테라스를 꿈꾸지는 않는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을 건성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처럼, 흥미롭게 지켜볼 수만은 없는, 내가 믿었던 것을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그래도 꼭 쥐고 있던

모래 속의 진실이 흘러 내린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목련나무의 꽃 잎들이 입을 벌리고, 시한부의 여름으로 인해 벌겋게 달구어지기 전에 봄의 기운을 만끽하는 중이고, 자신의 입술 주변에 향기를 더해 나를 보라고 속삭인다.


잠으로 돌아간 사람을 향기의 주문으로 흔들어도 깨워도 좋다며, 바람에 일렁이는 목련의 잎들이 노래를 하는 밤. 숲길을 통과하며 그것을 아래로 흔든다.


적막 속의 지팡이 노릇을 해주듯,

그 길을 따라 걸어보며

시간의 흉터가 붉은 살갗을 드러내고 앉아

거친 목마름을

거친 배고픔을

기다란 은빛 머리칼의 조화 속에

또 다른 길처럼 헐벗고

내가 깨워 난 광채가

더 가까이 거품을 내며 다가온다.


말들의 저녁을 지나

움푹 가라앉은 밤의 불 속에 있는

돌멩이처럼 앉아

쉬지 않고 굴러야 하는

언덕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던진다.


이 늦은 빛.

낮으로부터 해방된

모든 것처럼

밤에 흔들린

모든 것처럼

가늘게 반짝거리는 것들이

온몸을 감싸

고치가 되는 순간.


언제나 그 한 그루의 나무처럼,생각의 가장자리 곁에 언제나 열리는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며, 퉁명스럽게 밤 곁에, 맨머리로 그 곁에, 가까이에서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 불어주는 바람을 맞으며, 부당하게도 지속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시간의 눈 아래로 비스듬히 바라본다.


뜨거운 눈썹 곁에서 녹는 것들을

세상이 따뜻하게 만드는 것들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들을

생각을 물들이고 거칠게

말들을 통해 울창해지는 것들을

그리고 아름다운 것.


이것을 조망하는

낯선 눈 속에

잠자리를 핀다.

그리고

더 많은 흰빛이 가득하도록.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품에 안고

내가 꺼내어 들 수 있는

적당한 심연의 무게를 이불 삼아 덮고

풍겨오는 향기마저 꺾어

밤의 만개한 꽃들 앞에

놓아둔다.


낮 곁에서 어슴푸레 차 오려는 것을 놓고

나 역시 이제 놓아주는 시간에

별 너머로 날아간 삼킨 말들을

그저 넘쳐 흐리게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심취하여

그러도록 밤을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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