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유리잔

빛과 시간의 목마름에 대하여

by 구시안

하늘이 닫힐 때

하늘이 풀릴 때

빛의 지붕을 갖게 되는

낮과 밤

사방 어디에나 있는

빛이

목이 마른 육체를

적신 후

조용히 빛을 낸다.


밤 같은 것.

반짝거리는 것.

나체식물처럼 뿌리를 뻗는

하루의 절반이 지나간 시간.


자정 몇 초가 지난

그 떨리는 초침의 옆에 앉아

내 손의 피부 아래 기워진

손들로

시각의 유리잔에 비친

빛을 따라 생긴

그림자 속으로

깊이 매장된다.


시간이 푸르른 시계탑 옆에서 숫자의 막은 소리 없이 벗겨지고, 벚꽃의 아름다움을 등진 밤은 하얗게 거대한 기중기에 의해 조금씩 이동한다. 굶주린 문장들이 자정 후에 굴을 파고, 시인(詩人)이 될 수 없는 시인이 더 이상 신호에 춤을 추지 않는다.


푸르고도 검은 음절 옆,

밤에도 타오르는 빛과

밧줄과 어떤 침묵 사이에

기한이 있고

기한이 없는 것으로 분류되고 마는

초를 다투던 자정의 형상 속으로

날아가고 차단한다.


검은 숯으로

밤이 열렸고

열린 채 머무른다.


어린 번개가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니, 낮의 화려한 꽃잎들의 향기가 날아갈 정도로 비가 내릴 것처럼 보이고, 어디선가 도화선을 얽히게 한 것인지, 심장을 가슴에서 밤에게로 떼어내는 일은 잠시 잊고, 유리잔에 빛을 놓아두고 앉아, 유리잔을 입김으로 채워준다.


나는 꽃 진 시간의 끝에 서 있다.

새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는

시간의 동그란 탁자 곁에서

빛의 단지를 바라본다.


멀리 떨어진

꿈으로 멀게 물든

검은 숲에서 숨을 내쉰 것이

불어닥치고

때늦은 것은 떠돌아다니다

나를 찾아낸 듯

다가와 인사한다.


가라앉는 것과

떠오른 것은

밤과 달이라고 칭하고,

마음속 깊이 묻어둔 것에

아직

유효함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고

누군가와 주고받던 눈길처럼

그저

그렇게

눈이 멀어

입가에 흐르는 시간에 입을 포개도 좋은 밤.

나에게 머무르는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헤아리고

세월을 헤아린다.


어떤 입도 마시지 못하고

어떤 형상도

이루지 못하는 곳.


비를 마신다.

세상이

이제

비를 마신다.


조심스럽게

비밀스럽게

더듬고

신호를 보내며

우리를 불러들인다.


마치

초점 없이

내 눈 속에서

침묵하고

이리저리 거닐고 있는 것처럼.

비가 내린다.

시각의 목마름을 달래주듯

시간의 시각들을 부어주는 밤.


비와

바람의 입김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알아맞히기엔

충분한 밤이다.






Romance


Yuhki Kuramoto

조용히 스며드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잔잔하고 반복적인 이 음악처럼

그렇게

하루가 잔잔하고 반복적이길 바랍니다.


가끔씩

듣게 되는

이 피아노 선율에

마치

시간의 감각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음악에도

이미지로 흐르는 시간이 존재하며

소리로 흐르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격렬하지 않고

깊이 가라앉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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