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못하는 순간을 위하여

검은 연기와 푸른 파편 사이에서

by 구시안

나는 폐의 단순한 호흡에서 시작해

모든 삶의 목표와 움직임을 뒤로하고

백지를 만드는 중이다.


현실과 다른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어느 절대자의 하루와 다음 날 사이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졸음이나 꿈을 노래한다. 자정이 지나고 일곱 시간의 시간을 휴식 따위라고 간주한다. 동동한 사람들이 써 내려간 글을 읽다가,


선하든 악하든

밝든 어둡든

잠들어 있든 아니든

누군가를 그리워하든 그렇지 않든

앞사람의 등에서 눈길을 돌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다가 돌아와

냉정한 수도승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을 위하여

시간을 허비한다.


담소를 나무며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보기가 힘들어지고, 출근길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드리운

젊은이들의 그늘에 잠시 쉬어가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화기를 붙잡고 사는 현실 세계에 흠뻑 빠져 누군가의 손에 걸린 실로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된다.


의식을 드러내지 않은

온갖 태도와 몸짓을 보이며

모두가 스쳐가고

지나가고 있지만,

남자나

여자나

다를 것 없이

동일한 공(鞏)에

함께 묶여 있을 뿐이다.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절실히 느껴지는

무언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안다는 것이기에

그저

느끼는 것에 집중하며

밤이면 씹어먹을

양식을 키워갈 뿐이다.


기질 면에서 나와 정반대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와는 전혀 닮은 점이 없다는 것을

나와 다른 사람일수록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내 주관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일 것이다.


미친 듯이 한 작가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한 일이 되는지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사랑이 그러하지 못하는 것처럼, 다채롭게 펼쳐지는 사랑타령들에 지쳐 가며 살아가는 것에 흥미를 잃은 지가 오래인지라, 먼 거리를 유지하는 바로 평범한 인간의 집단에 묶여 나는 그들을 싫어하기에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오히려 편안한 상태가 되어

그림처럼 감상하기에

훌륭한 풍경을 찾아보지만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없으며

대체로 편안한 잠자리가 되지 못하는

외로움을 긴 밤 지새우게 되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을 위하여

이미 완성된 시(詩)처럼

시를 쓰려고 생각했던 상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꿈꾼다고 말하는 대신

본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색은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도

나와 상관없는 사랑의 풀잎이 자라고

자라나는 그 풀잎 위에

시간이 지나 이별이라는 비가 내리는

뻔한 이치에 지쳐,

햇빛은 이미 자랐거나 앞으로

자라날 풀잎을 비추고 동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그것이 이치라면

생각보다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이론의 거짓이 아니라

은유의 진실을 포함하기에

사랑이라는 것은

더 합당해도 괜찮을 법해 보이지만,

내게는

검은 증기선 굴뚝 위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에 불과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갈 뿐이다.


모든 것을 운연과 술수로 얻었을 뿐, 사랑이라는 산에 올라선 후 모든 것이 높여졌지만, 그 높이는 우리가 올라간 곳의 높이일 뿐이다. 수월하게 숨 쉬고, 다른 공기 같지만, 산을 몸소 오르거나, 누군가가 산에 데려가거나 둘 중의 하나인 단순한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실상 거리와 산 위에서 하늘까지의 거리가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의식으로는 산을 오르기를 거부하는 자.


사람으로 위안을 얻지 않는 삶에

가장 지독하게 스며드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차라리 골짜기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속도의 순수한 모방 같은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을 위하여, 단순한 속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달리지도 뛰지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으면서, 이것조차 지루해져서 더 강렬한 속도의 망상에 몸을 맡겨도 상관없는 속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없는 밤에 자리하여 내가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도전적인가를, 무언가를 강렬히 느끼는 게 두려워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위험이 있는 곳에는 결코 가지 않는, 그 위험이 지루해질까 두렵다는 말로 포장하는 밤에 쾌감과 공포를 맛보기 위해 틀어놓은 영화 한 편이 식을 무렵, 내 귀에는 화양연화의 흘러나오는 음악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지는 석양처럼 매우 지성적인 상태.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을 위하여

혼자 걷는 일에 익숙해져

여전히 늦고 깊은 밤

푸른 파편을 셔츠 아래 지니고 있다.





In The Mood For Love - Song Yumeji's theme Shigeru Umebayashi


영화 한 편,

그리고 두 편이 끝나고

모든 것이 식을 무렵

울리는 음악에 빠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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