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을 내는 그들의 시선
아슬아슬한 유리바닥 위를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구조의 멋도 좋지만 심리적인 위약감을 주는 구조물에 흥미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역시 아름다운 것에는 불편한 것들이 많다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출근길 사이에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사투는 그 유리 구조물 사이에 발자국들로 간격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팅을 위해 들어선 새로 이사한 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역사에 기차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엘리베이터 앞에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 또한 아슬아슬한 유리계단을 밟으며 올라갔다. 따라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불투명한 유리바닥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의 미팅을 위해 본사를 방문해야 하는 날이 있다. 그만둔 사람들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보고로 인사팀 미팅과 매장 홍보팀과의 간단한 이야기가 잡혀 있었다. 그리고 본사에 들리면 의례적으로 거쳐야 하는 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대표의 얼굴을 마주하며 사계절 뜨거운 차를 마셔야 하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금세 사람들로 꽉 찼다. 이 압박감을 이겨내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기에 사람으로 밀폐된 깡통처럼 답답한 엘리베이터에서 깊은숨을 쉬고 참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사람들을 보내고 여유롭게 탔겠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했다. 몇 초 후면 열릴 깡통을 기다리며 참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프랜차이즈의 궁극적인 목표는 매각이다. 가장 많은 체인을 내어 그것을 가장 비싼 가격에 파는 일이다. 모든 매장에는 관리자가 필요했다. 대표를 대신하는 리스크를 당감 할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그아웃에서 팔짱을 낀 채 마운드의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이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 마운드 위에 날아오는 공들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 선수들이다. 나는 그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필요 없거나, 본인의 의지거나, 혹은 팀에 불만이 많거나, 연봉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선수들은 모두가 떠나갔다.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떠난 선수들은 모두 대표를 미워했다. 나는 그런 상황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 내가 선택한 현장. 그 경기장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과 나누는 모든 것이 좋았다. 같이 땀을 흘리고 같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시간들은 동기부여가 되었고, 소중하게 남겨져 갔다. 매출이라는 타율을 보여야만 하는 자리이기에 매일 내 차례에는 늘 안타 이상을 쳐야만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기에 나는 처음 해보는 직업인 요식업에 자리하여 일찍 관리자로 자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는 책임을 떠안아야 하니 만들어놓은 직함이 관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관리자다. 입사 당시 본사에 남아 디자이너 출신이었기에 여러 가지 일을 해주길 바라는 임원들의 말에 나는 현장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열두 개의 직영매장과 늘어가는 가맹점을 관리할 사람들을 찾고 있던 회사에는 늘 관리자가 필요했다. 모든 매뉴얼을 배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일이 재밌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두 개의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본사용 직함인 부장. 또 하나는 총괄이라는 현장에서 쓰는 직함이었다. 대표가 나에게 총괄자리를 준 것은 의외로 빠른 것이었다. 어떠한 이유가 그들의 입에 오르고 내렸을지 모르지만, 모든 결정에는 대표의 입김이 있었다.
현장에서의 모든 일을 떠안으며 해결한 것은 나와 현장사람들의 땀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소리 없이 잘 운영되도록 사람과 매장을 관리해 줄 사람들이었다. 밑으로 후임들이 현장에 배치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겪었는지 그들은 모르거나 모른 척을 한 세월이 길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묵묵적으로 하루를 버텨냈던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파악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매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사람들 간의 싸움,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요식업이라는 세계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팀이 필요했고, 그 팀을 꾸리기 위해 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은 포기했던 디자이너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소박한 작업실에서 혼자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괴롭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매우 즐거웠고, 편했던 일이었다는 걸, 요식업 세계에 와서 알게 되었다. 새로운 매장들이 늘어갈수록 마주쳐야 하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지겨운 사람들. 점점 개미군단처럼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회사는 소리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할 일은 많아지고,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는 직영매장과 늘어가는 가맹점 사이를 오가며 바람이 잘 날 없는 사람들 숲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과 집. 불면이 이어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것은 습관처럼 하루의 자리를 잡아 움직이지 않는 나만의 패턴이 되어갔다. 그럴수록 마음속에 점점 커져가며 가라앉는 빙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자리한 스핑크스는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서 나에게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수수께끼처럼 풀기 힘든 힌트조차 없이 답을 기다리는 스핑크스와의 마찰은 매일 밤 길어졌다.
한 조직 내의 바닥에 깔린 침전물은 보통 새로 들어온 멤버 내지, 제삼자에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요식업 경력이 화려한 인원들은 그것을 빨리 캐치해 냈다. 하나 열정만을 가지고 들어온 그들에게는 뼈가 아프고 머리가 아픈 것이 요식업이라는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들 속에서 사람이 일을 해야 하는 서비스직업이라는 것은 요란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팀들에게 말하는 것이 있었다. 새로운 매장에 투입되어 가는 관리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힘들지 맙시다. " 이 말은 지금 맡고 있는 현장에서도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묵언에 서로 괴롭히지 말고, 힘들지 말고, 보이는 것은 그냥 스스로 해버리고 말라는,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소리 없는 압박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느낀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표현이었다. 요식업은 몸이 힘들고 머리도 힘든 곳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몸까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사방이 성능이 좋은 스피커들이었다. 12시간의 노동 속에 숨을 몰아쉴 수 있는 시간은 정해진 1시간 30분. 이 조차 못 쉬며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가 말도 없이 안 나오거나 사라지거나하는 일도 있었다. 그 인원을 대신하여 두배로 뛰어야 하는 인원들은 당연히 현장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뛰었다. 설거지 서빙 할거 없이 그 빈자리를 매우려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 속에 나를 따르는 인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은 일적으로 라는 선을 나는 지키고 있다. 하지만 본사에 올 때마다 속에서 밀려오는 욕지기를 참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보기 싫은 대표의 얼굴을 마주하며 마시는 그 사계절 뜨거운 차가 싫었다. 웃으며 매장마다의 매출을 비교하는 입가에 흘러나오는 언어가 싫었다. 본성의 눈금을 판독하려 하는 임원들도 싫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모든 압박감이 익숙해진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되어 남지 않게 되었다.
미팅을 마치고 내려오는 아슬아슬한 유리바닥 사이로 어디론가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되고 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시선에는 금방 깨져버려 떨어질 것만 같은 사람들의 무게가 유리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회에 나와 언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현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어쩌면 쉽게 깨지기 쉬운 유리바닥이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질 수 있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람이라는 것은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 같은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내가 십여 년을 요식업에 일하며 느낀 것은 사람이 전부일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사업의 요소는 요식업에서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요하거나, 원하거나는 늘 우리의 선택 몫이었다. 사회에 자리하고는 필요 없거나 원치 않거나는 늘 그들의 몫이었다. 예정된 자리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은 현실 속에 꿈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목표했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깨지기 쉬운 공간이, 아슬아슬한 유리바닥에 놓여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기다려 서있는 사람들처럼,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떨어져 낙하는 순간까지 기다리며 참고 사는 것이 사회에 나와 겪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물들고 있었다.
유통기한이 없는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시간 속에, 이제는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길어져 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슬아슬한 유리바닥 위에서, 마음속 가라앉은 빙하는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