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색을 버린 세계에 들어왔다
검은 빛이 먼저 말을 걸어오고
흰 침묵이 그 뒤를 따라왔다
모든 사물은 이름을 포기한 채
윤곽만으로 살아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시간은 물이 아니라 먼지처럼 흩어졌다
어제의 얼굴은 오늘의 그림자가 되었고
미래는 아직 인화되지 않은 필름처럼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위를 걸었다.
발자국은 남지 않았고
남는 것은 오직
지워지지 않는 대비뿐이었다.
검은 것들은 더 깊어졌고
흰 것들은 더 멀어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채
조용히 분해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에는 온도가 없었고
누군가는 울고 있었지만
눈물은 투명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색을 잃는 순간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이 세계에는 붉은 분노도 없고
푸른 슬픔도 없다
오직 눌린 검정과
떠오르는 흰색만이
서로를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한 장의 사진 속에 서 있었다
아니, 사진이 나를 품고 있었다
찰칵,
그 소리는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이 멈추는 방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지는 법을 배웠다
빛이 나를 통과하고
어둠이 나를 받아들일 때
나는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또렷하게 남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 흑백의 세계가
끝내 나를 지워버릴지라도
적어도 한 번은
완전히 드러난 채로
존재하고 싶었으므로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한 장의 사진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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