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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브로 Feb 06. 2021

망하는 데엔 왕도가 없다.

행복한 가게는 모두 비슷한 모습을, 망하는 가게는 모두 제각각의 방법을.

망하는 데엔 왕도가 없다.


코로나가 여럿 울리는군요. 몇 달 전 망해버린 가게 터. 한 동안 공실이었던 곳에 새로운 가게가 생기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것은 1도, 아니 0도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어제의 빵집이 오늘의 옷집, 오늘의 옷집이 내일의 꽃집. 유동 인구가 아닌 유동 가게가 많은 자리는 어딜 가나 꼭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했던 카멜레ZONE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가게가 자주 바뀌는 상가가 있다는 말. 이쯤 되면 풍수지리도 과학인가 봅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독특한 가게를 보았습니다. 이른 시간, 닫힌 문, 불이 꺼진 체로 폐업을 알리고 있는 옷 가게. 물론 이 가게도 자리를 잘못 잡았는지, 5달을 채 버티지 못했습니다. 소비자의 마음이 활짝 열린 시기도 아니고, 지독한 코로나에 5달을 버티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가게의 특별한 점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어느 망해버린 가게처럼 보이지 않는 포스터. '눈물의 폐업 정리', '마지막 정리'와 같은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정기 세일 행사인 줄 알았습니다. 망하는 게 딱히 좋은 일은 아닐 테지만 이런 모습이라니. 심지어 형광색 하트와 별들로 꾸며 놓을 걸 보니, 모두 같은 모습으로 망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무슨, 로또라도 맞았나 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발랄한 폐업 소식에 어이가 없군요. 뭔가 믿을 구석이 있나 봅니다. 하루 종일 이 가게의 사정을 생각하다 떠오른 생각. '망하는 모습엔 왕도가 없다.'

물론 인생을, 사활을 건 자영업자들에게 무턱대고 위로하고 힘내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자영업을 아직 하고 계시고,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 줄 보며 자라왔으니까요.

그럼에도 '망하는 데엔 왕도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망했다고 꼭 슬퍼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망했다며 저렇게 웃을 수도 있군요. 최근에 새로운 꿈을 찾아 퇴사한 저에게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인가 봅니다.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똥꼬 발랄하게 망해 버린, 그러면서도 저렇게 해맑은 포스터를  내걸 수 있는 용기. 장사를 하며 뭘 얻었든 내일의 해는 뜰 테니까 어쨌든 웃어넘기겠다는 용감한 웃음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망하는 데엔 왕도가 없다. 망했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뭐. 이제 중요한 사실을 알았으니, 자기소개서를 다시 써야겠군요. 혹시 모르니 로또도 하나 사려구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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