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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브로 Aug 18. 2023

빛을 받고서야 내색한다

20230818

@sibro, 빛을 받고서야 내색한다, 2023


빛을 받고서야 내색한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다, 싫다, 어렵다, 쉽다와 같은 표현이 잘 드러나지도 않죠.
물론 말을 하긴 합니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죽을 듯이 아찔해져!'라는 순간이 되어서야 말이죠. 그렇게 꺼낸 말은 또 가벼울 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말은 천사의 눈물 한 방울처럼 귀합니다. 때론 진득하고, 진한 맛을 냅니다. 말을 꺼낸 이에게도, 듣는 이에게도. 어쩌면 마음속에서 농축된 말이라 그럴지도 모르죠. 


일명 MBTI가 ixxx인 사람들. 그들에겐 항상 어색한 공기가 따라다닙니다. 그들에게 어색한 공기는 방탄복이자 완충 스티로폼일 테지요.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시켜는 역할. 그들에게 불편한 건 어색한 공기가 아닌 타인과의 교류일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극히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이 결국, 타인을 밀어내게 되는 아이러니가 일어납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 말이 없었던 사람인데, 한 가지에 꽂히면 다른 사람이 됩니다. 마치 수문을 개방한 댐처럼,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말이 쏟아집니다. 1분간 억지로 숨을 참고 있던 사람이 숨을 몰아쉬듯, 거침없습니다. 정말 말 한마디가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 한 가지에 꽂히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폭주하나 싶기도 합니다.


우린 보통 그제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게 됩니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니. 분명 눈에 잘 띄지도 않던 사람이었는데...' 그 한 번의 폭주를 통해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으나, 제대로 알고 보면 보통내기가 아닌 그런 존재.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힘숨찐이라는 말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 짧은 순간으로 한 존재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이름 모를 잡초가 발견되어 이름을 얻게되듯이 말이죠. 하루 한 번 태양이 그림자 속에 숨은 식물을 조명하는 순간, 우리는 그 녀석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되니까요. 분명한 건 녀석도 이때다 싶어 자신의 색을 드러내며 그 존재를 뽐내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듯이.


물론 이 경우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종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굳이 서치라이트를 켜고 그런 발견을 하시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재발견하게 된다면, 당황해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한 존재가 발견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존재의 하이라이트로 기억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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