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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Dec 31. 2017

동학의 공부법(10)

- 필법 : 글쓰기는 동학공부의 중요한 방법중 하나 

6. 천도교 수련의 유형 3 : 필법


‘필법’ 또한 오늘날 우리가 복원하여 계승해야 할 동학 공부의 하나이다. 『도원기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윤석산 역주본, 문덕사 刊)


(1) (임술년, 1862년 11월) 초 9일에 다시 선생께서 손봉조의 집에 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 경상과 더불어 며칠을 머물며, 어렵고 즐거움을 한 가지로 즐기면서, 또 아이들과 더불어 글씨 쓰는 연습도 하고, 습자(習字)도 가르치며 나날을 보냈다. 

(2) 선생께서 글씨 쓸 도구와 종이를 준비하여 밤 깊도록 쓰는데도 한 자도 이룩되는 것은 없고, 종이만 세 권을 허비했을 뿐이다. 선생께서 한울님께 고하여 말하기를 ‘신인께서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제가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쉬고 다시 쓰니, 역시 난필(亂筆)이라. 선생께서 말하기를 ‘신인께서는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제가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고 글씨 쓰기를 수없이 써도 종내 글자를 이루지 못할 뿐이다.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잠시 글씨 쓰기를 멈추어라. 후에 반드시 붓을 내릴 것이니, 

(3) 그때 아이들과 더불어 혹 쓰고, 혹 붓을 잡으면 글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니라.


여기서 첫 번째 단락[(1)]의 ‘습자(習字)’는 오늘날의 '붓글씨 쓰기'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붓글씨 쓰기가 예로부터 전통적인 '수양'의 한 방식이었던 점과 연결 지어 이해하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두 번째 단락[(2)]의 글씨 쓰기는 ‘영부’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거나 적어도 그와 흡사한 상황을 묘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다시 세 번째 단락[(3)]에서는 ‘필법’이 단지 ‘수련’의 결과로 ‘명필’의 능력을 갖추게 되는 ‘이적(異蹟)’의 측면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1) (계해년, 1863) 선생께서 하루는 둘째아들 세청과 김춘발, 성일규, 하한룡, 강규와 더불어 소일하다가, 비로소 필법(筆法)의 조화가 되어, 액자(額字: 현판에 쓰이는 큰 글씨)를 쓰기도 하고, 진체(眞體)를 쓰기도 하였다. 

(2) 불과 며칠 사이에 필치가 왕희지의 필적과 흡사해졌다. 

(3) 사방의 도인들이 필법의 신기함을 듣고 날마다 문에 가득 몰려들었다. 4월에 영덕 사람인 강수가 도수(道修)의절차를 물었다. 선생이 말하기를, ‘다만 성(誠).경(敬).신(信) 석 자에 있다.’고 하였다. 

(4) … 이해 6월에 각처의 도인들에게 액자(額字) 한 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특히 이를 써서 각처에 반포할 즈음에, 강수가 와서 선생을 뵈니, 십여 장 중에서 성(性)자가 있는 것으로 주며 ‘이것은 그대가 가지고 가거라.’하고 또 <경재(敬齋)> 두 자를 써 주었다. …” 


붓글씨 쓰기는 ‘서도(書道)’로 불릴 만큼 오랫동안 정신 수양의 일환으로 여겨져 왔던 만큼, 수운대신사 또한 득도 이후에도 이러한 서도 전통을 도외시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였음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수운 선생의 글씨는 ‘포덕’과 ‘교화’의 중요한 방편이었다는 점도 이 글에서 알 수 있다. 수운대신사께서 ‘사방에서 모여든 도인’들에게 ‘액자’를 나누어 주신 일이나 ‘경재’라는 호를 손수 써서 내리는 과정도 오늘날 우리가 복원하고 계승해야 할 문화적 전통이다. 

수운 선생의 글씨는 당대 도인들에게 스승님의 분신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스승님의 ‘도력’이 묻어나는 매개체로 여겨졌음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동경대전>에 수록된 수운 선생의 <필법>에 관한 글은 이것이 단순히 '붓글씨 쓰기'를 넘어, '수행'과 '수양'의 경지에서 이해해야 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필법

닦아서 필법을 이루니 그 이치가 한 마음에 있도다.

우리나라는 목국을 상징하니 삼절의 수를 잃지 말아라.

修而成於筆法 其理在於一心  象吾國之木局 數不失於三絶

여기서 나서 여기서 얻었는 고로 동방부터 먼저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을 어여삐 여겨 글을 쓰는 데 안팎이 없게 하라.

生於斯得於斯 故以爲先東方  愛人心之不同 無裏表於作制  

마음을 편안히 하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획을 시작하니 모든 법이 한 점에 있느니라.

먼저 붓 끝을 부드럽게 할 것이요,  먹은 여러 말을 가는 것이 좋으니라.

安心正氣始畫 萬法在於一點  前期柔於筆毫 磨墨數斗可也 

종이는 두터운 것을 택해서 글자를 쓰니,  법은 크고 작음에 다름이 있도다.

먼저 위엄으로 시작하여 바르기를 주로 하니  형상이 태산의 층암과 같으니라.

擇紙厚而成字 法有違於大小  先始威而主正 形如泰山層巖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 그리고 주역의 원리까지 망라하여 쓰여진 글이어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나, 글을 쓰는 것이 "마음을 편안히 하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르기를 주로 하고 태산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데 이르는 '수행-수양'의 방법론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영부’는 ‘주문 수련’과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지만, ‘필법’은 주문 수련과의 연관성 외에도 ‘수양’의 전통으로서 복원하여 천도교 수련의 한 갈래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동학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의암 선생의 붓글씨 친필도 많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글씨 쓰기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이어져 오고 있기는 하다. 


현재 천도교 문화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천도교미술인회 가운데서 가장 강점을 보이는 부분이 ‘서예’ 부분임을 감안한다면, ‘붓글씨’ 쓰기를 교단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시행할 필요는 더욱 분명해진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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