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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6. 2022

불교와 함께한 종교연구

[모들새책] 

1. 


이 책은 한국 '불교학'계와 '종교학'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범재 이민용의 학문적 업적과 가르침에 힘입어 공부하고 연구해 온 종교학계의 제자와 동학(同學)들이 그의 팔순을 기념하며, 그 학문적 결을 따라 연구한 성과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이 책의 글들을 통해 우리는 “조계종”이라는 한국 불교 최대 종파가 형성되어 온 역사와 성격, 일제강점기 “불교” 잡지의 흥망성쇠와 그 이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로서의 불교 조계종” 이외에 가능태로서의 불교 근대, 민주화시대 불교개혁운동의 진상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제1부는 한국 근대 불교의 탄생과 성격에 관한 논의들을 다룬다. 제2부는 그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려 종교학에서의 분류 체계, 종교 경전, 그림과 신화, 섹슈얼리티 문제 등에 관한 글을 통해 종교 일반과 불교를 조망하는 글들이 수록되었다. 제3부는 이민용이 학문 인생을 회고하는 수상을 실어, 그의 학문 세계에 접근하는 길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2.


범재(凡哉) 이민용 선생은 종교학의 자리에서 불교를 연구하는 동시에 불교학의 자리에서 종교를 조망해 온 학자로서 불교학과 종교학의 가교를 놓는 동시에 한국 불교학계와 종교학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연구자다.  


3.


19세기 후반 서구에서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과 함께 근대 학문의 하나로 등장한 종교학은 비교를 지적 무기로 삼고 출발했다. 초기 종교학의 비교 작업은 서구 종교와 동양 종교의 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당시 서구 종교를 대표한 것은 기독교, 동양 종교를 대표한 것은 불교였다. 종교학에서 불교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날 불교학으로 불리는 학문 분야 역시 서구 근대의 산물이다. 서구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로 된 불교 문헌을 번역, 해석하면서 근대 학문으로서 불교학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불교학은 불교를 신앙의 언어가 아니라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초기 불교학은 엄밀한 문헌학적 방법을 주된 무기로 삼았다.


4.


종교와 불교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이들을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종교학과 불교학은 그 역사가 두 세기도 되지 않는 젊은 학문이다. 두 학문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기 때문에 인적 지적 기반을 상당 정도 공유한다. 종교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불교학자들을 만나게 되고 불교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종교학의 비교 방법이 불교학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불교학의 문헌학적 방법이 종교학에서 주요 무기로 활용된다.


5.


두 학문 모두 오리엔탈리즘의 깊은 영향 하에서 출발했다. 주지하다시피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타자화하면서 만들어낸 담론과 표상과 이미지로서 동양을 열등한 것으로 보는 서구 중심주의다. 현대 종교학과 불교학의 역사는 오리엔탈리즘의 회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오리엔탈리즘은 두 학문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민용 선생이 근대 불교학과 오리엔탈리즘의 관계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최근 불교계의 새로운 풍경은 서구인의 불교 수용이다. 그동안 학문적 분석 대상으로만 존재하던 불교가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인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서구인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명상 수행을 비롯하여 ‘백인불교’나 ‘불교신학(Buddhist theology)’과 같은 이질적 용어의 등장은 이러한 새로운 풍경을 대변한다. 이민용 선생은 이러한 현상이 지닌 의미를 종교학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일에 주력해 왔다.


6.


이 책은 이민용 선생이 그동안 펼쳐 온 학문의 세계와 삶의 이력을 염두에 두면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제1부는 한국 근대 불교의 탄생과 성격에 관한 논의다. 개항 이후 불교가 서구 근대성의 도전에 직면하여 어떠한 고뇌의 몸짓을 펼쳤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 종교로 새롭게 탄생한 불교는 어떠한 성격과 특성을 지녔는지를 검토하였다. 


특히 과거의 유산인 조선 불교 전통과 서구 근대의 종교인 기독교, 그리고 경쟁자이자 모방의 대상이기도 했던 일본 근대 불교가 한국 근대 불교의 탄생에 어떻게 개입하면서 깊은 흔적을 남겼는가를 ‘전통의 발명’(invention of tradition)과 혼종성(hybridity) 개념을 무기로 하여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종교학 산책’이라는 제목을 단 제2부에서는 세상의 지도 역할을 하는 분류 체계, 종교적 권위의 토대가 되는 경전, 종교적 상상력의 보고인 그림과 신화, 그리고 종교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섹슈얼리티 문제를 종교학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글들이 실렸다. 마지막 3부에서는 범재 이민용 선생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스케치 형식으로 접근하는 글들로 채웠다.


■ 범재 이민용(凡哉 李珉容)


이민용(李民鎔)은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였다. 동국대학교를 비롯하여 가톨릭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하였다. 그 뒤 미국으로 이주하여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미주 한인신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였다.


2000년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국제참여불교연대 실행위원, 영남대 국제교류원 교수, 동국대 객원교수, 한국불교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2018년부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사상사를 전공하였으며 서구 불교학의 탄생과 오리엔탈리즘, 한국 근대불교와 불교학 등에 관심을 기울여 왔고, 불교고전어와 인도사상사 등을 강의하였다, 「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2000), 「미국 속의 불교와 불교의 미국화」(2002),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2005), 「불교의 근대적 전환-이능화의 문화론적 시각과 민족주의」(2009), 「근대 불교/학의 형성과 아카데미즘에서의 위상-서구 불교학 형성에 대한 반성적 성찰」(2012), 「근대기 호교론으로서의 백교회통-교상판석의 근대적 적용」(2016) 등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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