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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16. 2022

편집후기 - 다시개벽 제6호

다시개벽, 제6호, 2022년 봄호

편집장 / 홍박승진 



‘서구의 것이냐 우리만의 것이냐’라는 선택지는 올바르지 않은 선택지일 수 있다. ‘우리만의 것’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은 배타적 민족주의, 순혈주의, 인종주의 등의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 근대성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느냐’이지 않을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서구’ 자체가 쥐는 아니다. ‘서구적 근대성’이 바로 그 쥐다. 더 정확히 말하자. 서구적 전통 속에도 고통의 원인이 되는 전통(쥐)뿐만 아니라 고통을 겪은 자들의 전통(고양이)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동양에도 고통을 겪은 자의 전통(고양이)뿐만 아니라 고통의 원인이 되는 전통(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고양이와 서구의 고양이가 힘을 합해야 한다. 쥐를 잡는 방법은 다양할수록 좋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구의 쥐 잡는 방식만이 세련된 것이고 한국의 쥐 잡는 방식은 후진 것’이라는 획일적ㆍ수동적ㆍ관습적 사고가 오늘날까지도 만연한 것은 큰 문제이다.) 그 고양이를 ‘억압받는 자의 전통’이라 부르고 싶다. 동서양의 쥐 같은 것이 ‘억압하는 자의 전통’일 테고.


서구 근대를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모델로 삼는 태도는, 서구 근대가 그동안 수많은 한계를 드러내어 왔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우리의 창조성이 발화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정치ㆍ경제ㆍ학문ㆍ문화의 창조는 서구에서만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그것을 모방/수입/유통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될 위험이 큰 것이다. 이처럼 서구가 창조한 모델에 나머지가 맞추기만 하면 된다는 서구중심주의는 일종의 전체주의가 아닐까? 수동적 자아를 넘어서 능동적 자아가 되는 것이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면, 그것은 곧 모방하는 자아에서 창조하는 자아가 되는 것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편집위원의 인원수 부족 등과 같은 문제 때문에 이번 제6호(봄호)의 발간이 너무나도 늦어졌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제7호(여름호)부터는 새로운 편집위원 두 분을 모시기로 하였다. 창간호에서 계획한 바와 같이, [다시개벽]의 매 여름호는 기후위기에 맞서 생명과 살림의 문명을 모색하는 사유의 자리가 되고자 한다. 살림 문명으로의 참된 전환은 인간과 자아에 관한 낡은 통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학에서 자아를 ‘하늘님을 모신 존재자’로 새롭게 규정하는 것처럼. 서구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가 20여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제7호에서는 그 논의를 이끈 중요 이론가 중의 하나인 브뤼노 라투르를 소개할 예정이다. 이론을 소개하는 글뿐만 아니라 죽임 문명과 살림 문명이 삶의 구체적 현장 속에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증언하는 글도 7호에 실을 것이다.

다시개벽 제6호 - 권두언(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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