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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05. 2022

방정환의 글쓰기 강좌

"이렇게 하면 글을 잘 짓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글을 잘 짓게 됩니다

- <어린이> 1924년 12월호


一記者(방정환)


● 생각하는 고대로 쓰라.

● 정신을 쏟아 넣어 지으라.

● 많이 읽고 많이 지으라.

● 몇 번이든지 좋게 고치다.

● 힘써 남의 비평을 받으라.


학교 작문 시간에뿐 아니라 어느 때든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짓게 될 수 있을까. 나도 한번 글을 잘 짓게 되었으면….' 하고 여러분 중에는 이런 생각과 희망을 가진 이가 많을 줄 압니다. 물론 장래에 문학가나 문장가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업가가 되든지 무슨 기술가가 되든지 무슨 직업을 갖든지,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남에게 적어 보일 만큼 한 재주는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게 될는지, 대단히 간단하게나마 나는 거기에 대한 몇 가지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대체 ‘그 글 잘되었다.' 하고 칭찬하는 것은 무엇을 표준하고 하는 말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무것보다도 먼저 그 글에 그 사람의 속생각이 분명하게 나타냈느냐, 안 나타났느냐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즉 누구든지 그 글을 읽고 그 글을 써 놓은 사람의 생각을 똑똑히 잘 이해하게 되었으면 그 글을 잘된 글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남이 내 속생각을 똑똑히 알게 쓰게 되느냐 하면, 자기의 느낌과 뜻과 생각을 조금도 더 꾸미지 말고 더 빼지도 말고 고대로 생각 고대로 써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공연히 글 잘하는 체하고 남의 글에 있는 문자만 골라다 늘어놓거나 남의 글 흉내만 내어 꾸며 놓으면,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쓴 사람의 속생각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니까 그 글은 아무짝에 소용없는 쓸데없는 글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학교 사무실에 가서 학생들의 작문 지은 것을 보니까 문제는 ‘춘(春)’인데 이것저것을 모두 뒤져 보아도 모두, ‘엄동설한은 어느덧 지나가고 춘삼월 호시절이 래(來)하니 아등(我等, 우리)은 대단히 유쾌하도다. 도리화(桃李花, 복숭아꽃과 자두꽃)는 만발하고 봉접(蜂蝶, 벌과 나비)은 춤을 추니 평화한 낙원이로다….’ 서로 약속하고 쓴 것같이 이러한 글들이었습니다. 조금 다르대야 엄동설한을 ‘삼동대한(三冬大寒, 겨울 석달간의 매우 심한 추위)’이라 하고 춘삼월 호시절이 ‘양춘삼월(陽春三月)’로 변하였을 뿐이지 별로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퍽 섭섭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60여 학생이 봄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고렇게 똑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같은 봄이라도 꽃이 피니까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해 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 있는 사람이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몸을 슬프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봄은 되었지만 아버지 병환이 계신 사람이면 꽃구경할 때도 한편에 근심하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또 똑같이 봄이 좋다 하더라도 꽃이 피니까 좋다거나 졸업을 하니까 좋다거나 운동을 하기 좋으니까 좋다거나 그 생각에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다른 자기의 생각 그것이 글에는 귀중한 것인 줄 모르고 온통 남이 쓰는 문자만 춘삼월 호시절이니까 유쾌하거니 무어니 하고 늘어만 놓으니 누가 그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속을 이해는 고사하고, 어림치고(어림잡다) 짐작이나 해 볼 수 있습니까. 그런 글은 아무 소용없는 붓장난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글은 짓는 것(꾸미는 것)이 아니고 쓰는 것입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고대로 쓰기만 하는 것입니다. 짓거나 꾸미거나 하면 그만 그 글은 망치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편지를 쓰는 데는 더욱 주의하여 사실대로 생각하는 고대로 쓰지 않으면 큰 낭패 하는 것입니다. 편지도 훌륭한 글인데 일기(日氣, 날씨)가 치(추)운데도 문자 꾸미노라고 편지에는 ‘일기 화창하온대’ 하거나 자기는 몸이 아프면서도 편지에는 ‘객관(客館, 객지에서 나그네가 머무는 집) 생활이 별고(別故, 별다른 일) 없사오니’ 해 놓으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시나 무어나 글을 쓰는 데는 꾸미지 말고 숨기지 말고, 생각하는 고대로 느낀 고대로만 충실히 써 놓는 것이 제일 잘 짓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글에는 자기 정신을 아주 쏟아 넣어 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글이 피 있는 산 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피가 있고 정신이 박힌 글이면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읽는 사람이 감동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정신은 딴 데 두고 아무렇게 이 글 저 글 모아다가 꾸며 놓거나 남에게 칭찬받으려고만 살살 발라 놓은 글이면 그 글이 무슨 뼈나 피가 있으며 누가 그것을 읽고 조금인들 움직이겠습니까. 짤막한 글 한 구를 쓰더라도 자기의 온 정신을 쏟아야 그 글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되도록은 힘써 남의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잘된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잘된 글은 몇 빈이든지 되풀이해 읽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아는 지식이 많아야 무엇을 보아도 얼른 잘 느끼게 되고 생각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흔히 느끼는 것과 생각은 많이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말이나 글로 발표해 낼 재주가 없어서 갑갑해하는 것인데, 남의 잘된 글을 많이 읽으면 그 발표할 재주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된 글, 안 된 글 함부로 읽기만 하면 남독(濫讀, 아무 책이나 마구잡이로 읽음)에 빠져서 못쓰게 되는 것이니까 주의하여 좋은 글, 잘된 글을 골라서 많이 읽어야 하고, 또는 그 글 쓴 사람을 직접 만나서 그 글을 쓸 때에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으로 쓴 것까지 물어볼 수 있으면 더욱 유익한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 <어린이> 잡지에 뽑힌 글, 발표되는 글도 주의해 읽도록 하는 것이 크게 참고될 것입니다.


많이 읽는 동시에 많이 써 보도록 하여야 합니다. 암만 느낌이 많고 생각이 많고 아는 것이 많아도 자주 ㅆ 보지 않으면 글 쓰는 재주, 즉 내 속에 있는 생각을 남이 잘 알도록 나타내는 재주가 늘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 힘써 짓기 공부를 하여야 글 쓰는 재주는 자꾸 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써야 한다고 자꾸 되나 안 되나 함부로 써 두기만 해서는 못씁니다. 하나를 써 가지고는 그것을 읽어 보고 또 읽어 보고 하면서, 서투르거나 순하지 않은 곳은 몇 번이든지 고치고 고지고 하여야 글이 훌륭해지고 글이 부쩍부쩍 늘어 가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써서 팩 집어던져 버리면 글이 늘기에 힘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치고 고쳐서 쓴 후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께 보이 고 잘잘못 간에 비평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글을 지어서 믿을 만한 잡지사에 보내서 그 글이 뽑히니 아니 뽑히나 시험해 보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한두 번 보내서 뽑히지 않으면 그만두어 버리지만, 그것은 잘못하는 짓입니다. 몇 번이고 쓰고 쓰고 써서는 고치고 하여 보내되, 못 뽑히면 또 쓰고 뜨 쓰고 해 나가야 글은 부쩍부쩍 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흔한 잡지나 신문에서 종이 구석이나 채우고 글 보내는 이의 환심이나 사기 위하여 되나 못 되나 함부로 뽑아 주는 것을 믿어서는 못씁니다. 들지 못하고 도리어 버려지기 쉬운 까닭입니다. 그것은 주의 하여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해 드릴 것은, 글을 쓰려는 사람은 평시에 보든 물건과 모든 일에 대하여 자상하고 치밀한 관찰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개의 동작을 쓰려면 먼저 개의 동작을 실제로 정밀하게 보지 못하면 도저히 글을 쓸 때에 개의 동작을 잘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글을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읽을 때 실제의 개의 동작을 바로 눈으로 보는 것같이 알게 되면 그 글은 성공한 글이 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간략하지만, 대개 위에 말슴한 며 가지를 잘 명심하여 공부하시면 반드시 여러분도 글을 잘 쓰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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