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언어-003
갓생 = God + 生 + 살다
'신처럼 살다'는 아니고,
"(오늘 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다"라는 의미의 신조어랍니다.
이른바 MZ세대들 사이에 유행한다고 하네요.
'아주 완벽하다'는 '갓벽하다'
'아주 솔직하다'는 '갓직하다'로도 확장된답니다.
어제 읽던 책에서 그 말이 나왔는데,
저녁에 '따님'과 겸상하여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 말을 '현실용례'를 영접하고 감격하였습니다.
더불어 '현생살다'라는 인접어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현생살다란 '덕질' 등 지금 현재 나의 본업에서 살짝 비껴난
삶이나 생활, 시간을 보내다가 나의 본업,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네요.
'God'이 '접두사'로 쓰인다는 점에서는
'King'(킹)을 '접두사'로 하여 뜻을 강조하는 용법과도 닮아 있습니다.
아재+꼰대 세대에서는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이와 유사한 듯한데
이건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워크홀릭(일중독)'이거나
혹은 과로사회의 한 단면을 묘파하는 씁쓸한 의미로 쓰였던 것 같네요.
한때 한국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던 '황우석 사건' 당시
'황우석 사단'이 '줄기세포'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을 살았다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요즘 'MZ' 세대에게서 유행한다지만, 어찌 보면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의 40, 50 세대가 어렸을 적
방학을 시작하면 만들곤 하던 "방학중 공부계획표"가
적어도 계획표 상으로는 완벽한 '갓생살기'의 전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로부터 45년쯤이 지난 지금 내 삶은
아마도 "갓생살다"와 "월화수목금금금" 사이에 놓여 있는 듯합니다.
(이건 착각과 자기기만 사이일 뿐, 현실은 '월화수목금금금' 중에서도 중증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 봅니다만.)
그러나 오늘의 MZ세대에게 '갓생살다'라는 말은 자기기만이나 착각보다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겠다는 자기다짐이자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에 훨씬 더 가까운 용법인 듯합니다.
어제 제 '따님'의 말에서도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꼰대스럽게, 거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내가 '스스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
'내 기준으로'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 마음이
진짜 내 마음이고 내 의지이며 내 기분일지는 의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이미 매트릭스 사회여서, 지금 내가 진짜 나인지
지금의 내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건, 계속해서 탐구해 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아무튼,
세상이 달라지는 모습이 이처럼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추신.
이 글을 아침에 올리고, 퇴근 무렵 인터넷을 보니,
주 69시간 근무 가능(탄력근무제?)에 관한 반발이 뜨겁습니다.
이 정부는, 어떻게든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사회를 재조직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애쓰는 것' 하나는 알아줘야 합니다. ㅠ
한 여론조사에서는 '노동자'들의 다수가 (60%?)
탄력(유연) 근무제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네들은 결국, '급여'의 삭감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겁니다.
현 시대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이 당연한 인간의 권리라는 점에 착안하기에
한국 사회는 아직은 '미개'한 듯합니다.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