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다담 이야기]
1. 보국안민이 계장안출고
오늘은 일요일, 천도교에서는 모시는날(侍日)이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천도교인들은 오전 11시에는 '교당'에 모여서 '시일식'이라는 종교 의례를 시행합니다. 재작년부터, 월 2~3회, '시일식 후'에 오후 2시부터 '도담다담'(道談茶談)을 합니다. 차 한 잔과 함께 천도교의 교리나 철학, 사상 도는 그날 날 시일식 때의 '설교말씀'을 중심으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열린 모임입니다.
오늘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가벼운(?) 주제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행된 이야기들은 내일 또는 수일 내로 공유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얘기 중 의미 있는 단어 하나를 깊이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 중에, 참석자 중 한 분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은 '보세안인'(輔世安人)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국'은 '자국 중심주의'로 인식되어 국가간의 투쟁이 그치지 않게 하고, '안민'은 결국 '인간 중심주의'로 인식되어 오늘날과 같은 '기후위기'라는 크나큰 큰위기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보세안인은 온 세상(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것, 그리고 인간 전체를(국가나 민족, 인종, 남녀, 노소, 장애-비장애, 소수자 등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할 할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은 전자의 사례를 잘 보여주고, '안민주의'는 '안민'을 매개로 하는 권력의 '갑질'을 손쉽게 하는 구조를 낳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주 40시간 노동을 주 56시간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바람'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결국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일을 견강부회로 정당화하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보국안민은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면서 그 과정, 그 이유, 그리고 그 목적을 밝힌 '포덕문'이라는 글의 말미에 "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輔國安民 計將安出]라고 하여 동학이 '보국안민'의 계책이거나 혹은 그 계책을 내놓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한 데서 거론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동학'을 좋아하는 '동학인'들은 이 보국안민이 '동학(농민)혁명'의 핵심적인 구호롯 동학혁명의 주체들(전봉준 김개남 등)이 내세운 구호라고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동학을 창도할 때부터 중요한 미션으로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국안민은, 오늘 도담다담의 경우에서도 보이듯이, '국가주의나 '민(=백성)'에 대한 한 시혜(施惠)의 시선을 포함하고 있다며 회의적인 시선이 스멀스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국안민'은 '보세안인'이라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는 제안은 신선합니다.
우선 이 제안에는 "(천도교)경전"의 표현(글자)을 시의에 맞게 '바꿀 수 있다' /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대체로 일반적인 신도라면, 아니 일반인들조차 "'경전'의 글자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제안은 '경전의 글자를 바꾸자'고 제안하고, 또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습니다. 첫째는, 결과적으로 "경전의 절대성, 진리(경전)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둘째는, 경전(동경대전)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셋째는, '믿음'을 뒤흔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만약 보국안민을 보세안민으로 바꾸어야 한다면, 경전 전체의 글자 중에서 이 한 글자만 고치면(바꾸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어떤 단어나 표현이 '바꾸어야 하는' '바꾸는 것이 더 좋은' 것일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전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다른 접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경전'이라는 것은 한 시대의 배경을 안고서 저술 된 것인 만큼, 시대 환경이 달라지면, 그 근본 뜻을 생각하며 표현은 적절하게 바꾸는 것이 옳다는 식의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던 당시에 수운은 '천하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조선 또한 세계의 중심'이다라는 생각을 '발명'하고 '선포'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보국안민'을 '핵심 과제'로 설정한다는 것은 단지 우리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국가주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격변하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새로운 조류(국가 중심주의)를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매우 진보적인 발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21세기, 20년)에는 '국가주의'로는 '국가 내 문제'는 물론이고 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지구촌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윤리와 사상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국안민에서 보세안민으로!"라는 발상의 전환은 이러한 문제를 담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보국안민을 보세안인으로 바꾸기 전에 '보국안민'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보국안민이라는 말은 수운 최제우가 새로 만든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조선왕조실록에 19회가 보임)이 나오는 오래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대체로는 '보국안민(保國安民)'이라는 글자로 보입니다. 즉 (왕의 나라로서의) 국을 보위(保衛)함으로써 (왕의 臣民인)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수운 선생은 이걸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글자로 바꿔 씁니다.(이 글자 자체도 수운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이 글자가 보입니다) '보(保)'가 '보(輔)'로 바뀜으로서 즉 '안보/보위다하'에서 '돕다/보필하다'로 바뀜으로써 '보국안민'의 뜻도 거의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그중 한 가지 의미만 말해 보자면, 전자는 지배계층을 위한, 지배계층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말이마면, 후자는 인간 각자가 주체이며, 자기 스스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수운 선생의 '보국안민'이라는 단어에는 그 자체로 '개벽적 전복'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보국안민에는 이미 충분히 '보세안인'의 의미가 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도담다담에서 제기된 새로운 단어는 그 잠재된 의미를 끄집어 내어 현실화하며, 재조명 또는 재해석하는 과정이 낳은 생산적인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동학(천도교)를 공부하는 것이란, 그저 글자의 뜻을 곱씹으며 그 위대함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현재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움을 발견해 내지 못하면, 마치 숨을 더 이상 쉬지 못하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생각, 죽은 교리, 죽은 종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천도교는 오랫동안 '죽은 종교' '죽은 교리'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수운 선생이 '기'에서 '지기'로 '천주'에서 '시천주'로 나아간 것은 '새로운 말'을 '발견'하거나 '발명'한 것이면서, 기존의 언어(기, 천주)를 새롭게 써 나간 과정이었습니다. 해월신사가 '향벽설위'를 '향아설위'로 바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암성사의 '인내천'도 '인내천(人乃賤)'을 '인내천(人乃天)'으로 재발명하고 새로운 단어를 제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그런 점에서, 오늘 '보세안인'이라는 새로운 말이 '발명'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경전'에 대한 모독이며 '난법난도'라고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용시용활'의 새로운 접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도교인으로서의 나의 신앙 행태(行態)나 천도교의 종교적 정체성과 활동의 철학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오늘날 천도교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역할하고, 자리매김할 것이냐, 그리고 나는 왜 어떻게 천도교를 신앙할 것인가를 되묻게 하는 지점이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