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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30. 2023

흔들리다

-신성한말 

[1]
<흔들린 우정>이라는 노래가 있지요. 홍경민이라는 가수의 대표곡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정이 흔들린다면, 위태롭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수컷들에게 '우정'이란 자기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과 같은 것일 테니까요. 

그러나 흔들린다는 것은 한편 좋은 일입니다. 필연적이며, 불가피하며, 불가불입니다. 흔들린다는 건, 존재한다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변화의 에너지를 비축한다는 뜻입니다. 변화는 (인간의 시각으로) 파괴로 귀착되기도 하지만, 생성으로 귀일되기도 합니다. 흔들린 우정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더 느꺼운 우정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흐를지, 그걸 완벽하게 계산할 순 없습니다. 계산하고 흔들리는 것은 人爲(인위)입니다. 인人僞(인위)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인류의 지혜로는. ChatGPT-44.4버전이 되어도, 그건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계산할 순 있지만, 계산하는 순간-행위가 그 결과를 흔들어 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양자적'입니다.


오직 天運(feat. <명랑> 이순신 대사)에 맡길 일입니다. 여기에 人事(인사)가 들어옵니다. 

[2] 

이런 세계관을 담고 있는 시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아닐까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1/2연) 


다른 시(여백)에서 도종환 시인은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 나무 뒤에서 말없이 /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라고 노래합니다. 

흔들림을 보여주는 '허공'이란, 不然의 다른 이름입니다. 其然(기연)은 不然(불연) 덕분에 其然(기연)입니다. 不然(불연)은 其然(기연) 덕분에 자기인식의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3]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여백과 흔들림, 흔들리는 나무는 둘이 아닙니다. 물질(나무)이 공간(허공)을 만들어내고, 시간(흔들림)을 만들어냅니다. 흔들림의 '좌'에서 '우'까지가 시간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은 모두 흔들리는 것이지만, 그 흔들림의 정수는 생명/살아있음인 셈이지요. 


[4] 

그런 의미에서만 우주는 진화합니다. 진화는 未開로부터 文明, 未熟으로부터 成熟으로의 發展이 아니라, 본질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쪽으로의 開放이며 開方이고, 開闢이며 開新이고, 開創이자 開唱이고, 開善이며 開良, 改悛(개전)이며 開田입니다.  한마디로 생명의 자기실현 과정입니다. 


[5] 

<모시는사람들>이 흔들리더니, <모시는사람'들'>이 되려고 합니다.  그동안 '모시는'에 머물러 왔다면, 이제 '사람들'로 나아가며, 그것이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흔들림이 끝에 터지는 꽃봉우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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