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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Nov 15. 2023

기후위기와 미래종교,
그리고 개벽종교



앞(https://brunch.co.kr/@sichunju/1193)에서 살펴본 대로 ‘개벽종교’ 즉 동학을 필두로 한 한국의 ‘신(新)종교’들은 이미 그 탄생에서부터 ‘미래종교’의 자질, 잠재력, 미션(mission)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여 산생(産生)한 것이 개벽종교이므로, 그것은 필연적이며, 동어반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특히 전 인류, 전 지구, 전 생명 차원에서 최대, 최고, 최신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 시대에 미래종교로서의 한국 신(=개벽)종교들에 대한 기대와 염원은 나날이 커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적 종교로서의 한국 新宗敎 = 開闢宗敎의 특성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종교라는 이름으로 세속적인 (宗敎)권력(權力)을 구가하고(cf. 종교인 非課稅, 朝餐祈禱會, 支援金, 宗務官, 軍宗), 세속가치(=돈)를 추구하거나 뒷받침하며, 그로 말미암아 초월적 신앙대상에 대한 독점주의,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의 메이저 종교와 달리 개벽종교들은 ‘神聖(神性)의 內在化’ ‘超越性의 內面化’라는 지향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종교(Religion)의 관점에서 보면, 非종교(≒사이비종교), 脫종교라고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오늘날의 기후위기는 현상적으로는 산업혁명 이래 인간의 물질문명, 자본주의문명의 발달과 ‘기술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지만, 그러한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 발달’에 ‘종교(기독교) 윤리’가 톡톡한 역할을 하였음을 자랑해 온 저간의 역사에 대하여, 심신쌍전(心身雙全),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개벽적(開闢的) 세계관, 인간관, 사회관이 앞으로의 세계를 구원할 종교적 삶의 행태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셋째, 전통적인 제도종교가 표면으로는 이른바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내세워 ‘탈(脫)세속’의 고고한 성역(聖域)을 설정하고 고답적(高踏的) 자세를 견지하는 듯하면서도, 이면으로는 정치권력과 때로 거래-협력하고 때로 압박하고 때로 굴종하면서 끊임없이 세속적 이득을 편취, 독점코자 하는 경향에 맞서서, 개벽종교는 일상(日常)의 성화(聖化), 즉 지상천국(地上天國)을 표방하면서, 끊임없이 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變革), 혁명적인 개벽(開闢)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를 일러 교정일치(敎政一致)라고 말합니다.


넷째,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종교의 민낯(=하찮은 미물인 바이러스에조차 무기력함)이 노출되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스스로 저질러 놓은 배설물로 말미암아 초래된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 앞에서, 우리가 ‘지구호라는 침몰하는 여객선’에 타고 있으면서, ‘탈출할 곳도/ 탈출할 수도 없는’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존재-신세라는 점을 절감하였습니다. 이것이 ‘탈(脫(종교’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잠복해 있는 탈종교의 욕구가 일시에 분출하여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시발점, 스모킹 건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미래 종교는 ‘종교인 듯 종교 아닌’ ‘종교 아닌 듯 종교인’ 새로운 모습을 찾아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비(非)종교, 비(非)비(非)종교’의 현실적 증거가 바로 동학(천도교) 이래의 한국의 신종교들입니다.


그러나, 이론으로는, 원리적으로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지만, 오늘의 한국의 신종교가 그러한 본래적인 사명, 잠재성, 본성을 온전히 구현, 실현, 체현하고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 도리어 전통적인 舊종교(불교, 기독교(개신교, 천주교))들이 자기 안에서 ‘신종교’의 속성을 발견하고 발육하며,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群小한 ‘본래의 신종교’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취할 수 있는 사실은 한 특정 종교[宗團]의 역사적 유구함이나 규모의 대소(大小)가 신구(新舊)를 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혁신, 쇄신, 개신하느냐 여부가 신(新)종교이나 구(舊)종교이냐를 가름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은 의식 있고 양심 있는 종교인들은 누구나 ‘개벽(開闢)종교임’을 지향하는,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울님(부처님, 하나님, 神, 宇宙精神)이 이 기후 위기라는 미증유의 사태로써 오늘 이 시대의 인류에게 주는 지혜의 빛에 감응하는 종교인들의 불행 중 다행의 素行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뉴턴역학이 아니라 양자역학 시대, 즉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불확정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도 종교이면서 종교 아님, 종교 아니면서도 종교임을 동시적으로 실현하고 구현하고, 현현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시대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나날이 높아져가는 지구의 평균온도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빛의 이중성처럼 한울님의 계시 또한 위기와 기회의 양면성을 띠고, 복락과 천벌의 양가성을 띠고서만 인류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기회로 삼고 복락으로 받드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주, 자유, 자신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미래 종교(인)는 스스로를 개벽하여 개벽종교(인)로서 거듭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패는 물론 존폐가 결정될 것임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 이 글은 <모들카페 - 개벽학포럼>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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