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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07. 2016

동학, 봄 꿈(2)

수운이 맞이한 다섯 번의 봄 이야기

1. 동학, 봄에 태어나 봄을 꿈꾸다


동학으로 가는 길의 입구는 봄 아지랑이 속에 꿈처럼 열렸다.


"춘삼월 호시절에 또다시 만나볼까."


동학의 후천개벽, 밥이 곧 한울이며, 일하는 한울님이 여성과 어린이를 한울님처럼 섬기며, 하늘과 사람과 물건까지도 공경하는 새 세상은 봄처럼 온다고 했다. 봄이라고 했다. 이제, 동학의 봄 꿈을 따라가 보자.  


1824년, 경상도 경주 고을의 궁벽한 시골에서 태어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 어렸을 때 이름은 '최복술' '복술이']는 어려서부터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였다.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내가 살고 세상을 살리는 길을 갈구했다.


수운은 젊은 시절의 운수 행각을 청산하고, 더 본격적인 구도 행각을 위하여 용담의 살림을 모두 정리하여 처자들을 울산의 처가에 의탁하고, 자신은 울산 외곽 여시바윗골에 초당(草堂)을 마련하여 명상을 계속했다. 그 이듬해, 그의 나이 32세 되던 을묘년(1855) 봄. 소요음영(逍遙吟詠)하던 수운은 꿈인 듯 생시인 듯한 경지에서 한 스님을 만나 책 한 권을 받으니, 이를 을묘천서(乙卯天書)라 한다.


그 책에 하늘에 기도(祈天)하라 한 대로 해인사의 말사인 내원암과 그에 딸린 수도장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마친다. 손끝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궁극적인 앎의 문을 여는 길을 찾아 기미년(1859)년 가을, 수운은 운명처럼 다시 고향, 용담으로 귀향한다.


2. 구미산에 오만년 새 봄이 오다 - 첫째와 둘째 봄 사이, 너머


혹독한 산속의 겨울을 보내고, 산에 들에 냉이 달래가 땅 속의 봄을 길어 올리던 경신년(1860) 입춘(立春). 수운은 하늘에서 오는 봄을 맞으려 결의를 다진다. 불출산외(不出山外). 도를 깨닫기 전에는 산 밖을 나서지 않으리라. 아니다. 반드시 세상을 건질 도를 깨달아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리라(必出山外). 이어 입춘시 한 수를 지어, 하늘의 봄소식을 청한다.


“도의 기운을 엄숙히 보존해야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지 않으리니,

꿈을 잃어버린 세상 사람들처럼은 되지 않으리라

(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


하늘이 그 뜻에 응답하여, 그해 봄이 완연한 4월 5일, 수운에게 마침내 오만년 같은 겨울을 녹여 버리는 봄소식이 전해지니, 그 이름이 동학(東學)이고 천도(天道)이며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그 일을 일러 수운은 마침내 노래한다.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요,

구미산에 봄이 오니 온 세상이 꽃이로다

(龍潭水流四海源 龜岳春回一世花).”


또 이렇게 노래한다.


“꽃문이 스스로 열림에 봄바람이 불어오고,

성근 대울타리 사이로 가을달이 지나가네

(花扉自開春風來 竹籬輝疎秋月去).”


그렇게 경신년 봄부터 가을 사이, 그리고 그 가을에서 다시 이듬해(辛酉, 1861) 봄이 다 지나도록 수운은 동학을 공부하는 절차와 방법을 갈고 다듬었다.

그리고 봄꽃이 진 자리에 풋열매가 달려 커 가던 6월(신유년, 1861.6) 구미산 입구 문을 열고 세상 사람들을 맞아들이니, 세상은 구미산 아래 용담으로 몰려들어 스스로를 맑고 새롭고 깨끗하게 하고(淸新簡潔), 수운은 그들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아가, 청신간결, 개벽(開闢) 물결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봄이 오는 길이 그리 쉬우랴. 용담에 사람들이 모이자, 의심의 눈초리 매서워지고, 비방의 입살이 높아졌다.


“우습다 자네 사람 백천만사 행할 때는 무슨 뜻을 그러하며, 입산한 그달부터 자호 이름 고칠 때는 무슨 뜻을 그러한고. 소위 입춘 비는 말은 복록은 아니 빌고 모슨 경륜 포부 있어 세간중인부동귀라. 위심 없이 지어내어 완연히 붙여 두니, 세상사람 구경할 때 자네 마음 어떻던고(교훈가).”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수운 선생은 그 입살에 휘날리어 길을 떠났다. 정처 없는 발걸음이었는지, 작정한 걸음이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해 한겨울 수북한 눈속에 천지가 소요한 가운데, 수운 선생은 전라도 남원 땅에 이르렀다.


*그의 친어머니는 재가녀였다. 즉 한번 시집갔으나 남편이 요절하여 소년과부가 되었다가 최옥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최옥과 혼인할 때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은 이미 사별한 후였으므로, 첩은 아니다. 재가녀의 자손이라도, '서자'에게 과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과거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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