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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3. 2018

보국안민 발길로 서울을 걷다

이동초 지음 


책 보러 가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528474


서울, 오래된 신식의 도시
경제 발전은 건국 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명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한 한국민들은 때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경제 논리에 밀려 윤리의 잣대가 무시되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전통과 과거는 청산해야 할 적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산업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특히 서울의 변화는 눈부시다. 서울은 1394년 천도 이래 600여 년을 도읍지로 자리해 온 곳이지만 오래된 것들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먼 과거를 들출 필요 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만 돌아보더라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최신형의 도시이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과거 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흐름이 생겼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응답하라, 19○○」 시리즈로 대변되는 1980~1990년대를 추억하는 복고 드라마의 열풍이 있었고, 조선 시대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들을 피하기 위한 길에서 유래했다는 피맛골(避馬골)의 철거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정답은 없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가치 충돌 상황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고, 어떤 것은 적정선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적들 역시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상춘원같이 옛 터에 표석만 남은 곳도 있고, 서북학회 회관처럼 원래의 자리에서 건물만 이전한 경우도 있다. 또 면주동 천도교중앙총부처럼 정확한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는 곳도 더러 있다.

동학 천도교,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보국안민의 족적을 남기다
정치의 문란과 외세의 압력으로 혼란했던 조선 후기, 시천주(侍天主) 가르침으로 민중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졌던 동학은 교조 수운 최제우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죄로,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죄로 참형당하는 등 핍박과 고난의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느 역사에서나 새로운 것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배척당했고, 평등과 반봉건의 가치를 추구했던 동학 역시 그런 길을 걸었다.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교세를 확장하고 조직을 정비해 온 동학은 1905년 천도교라는 이름을 선포하며 변신을 꾀했고, 1906년 서울에 천도교중앙총부를 설립한다. 이때부터 천도교의 활동 대부분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민중들을 중심으로 세를 넓혀온 동학·천도교는 1900년대 들어 가장 거대하고 체계적인 종교 조직이 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3·1운동, 출판문화운동, 어린이운동, 교육사업 등을 주도하며 사회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천도교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울을 조명하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아쉬운 것은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거치며 많은 부침을 겪은 천도교의 교세가 약해짐에 따라 경운동의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우이동의 봉황각 등 몇몇을 제외하면 원형이 보존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성신가정여학교(성신여자대학교의 전신)와 동양공과학원(한양대학교의 전신)의 교사로 사용되기도 했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은 철거되어 사라졌고, 해월 최시형이 순교했던 자리를 가리키는 표석은 몇 년 사이에 다섯 차례 이상 위치가 옮겨지기도 했다. 보성학원(고려대학교의 전신)과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보성사 자리에는 조계사가 들어서 당시 있던 회화나무만 경내에 남았다.

책, 발로 뛰며 보국안민을 담다
“이 책을 만드는 몇 년 사이에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어떤 곳은 사진을 서너 차례 이상 교체했을 정도로 서울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장소를 직접 발로 뛰며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다. 
서울은 해방 이후로 한정하더라도 여러 차례 확장되고, 개발되고, 행정구역도 변경되었다. 최근에는 도로명주소체계가 도입되면서 ‘동(洞)’이라는 영역 개념이 유명무실해져 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하나의 번지였던 것이 여러 주소로 쪼개지거나 그 반대로 여러 곳이 하나의 주소가 되는 경우, 혹은 아예 주소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겼다. 각종 문헌과 행정관청의 기록 등을 조사하고 최종적으로는 직접 찾아가 확인했다. 

이 책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주제 아래 서울에 있는 천도교의 사적과 장소들을 그곳에 얽힌 역사와 사건, 인물과 함께 설명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확장해 동시대, 사건이나 인물과 접점이 있는 인근의 사적들을 소개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경운동의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우이동의 봉황각 등 천도교의 주요사적을, 2부에서 5부까지는 북촌, 경운동, 종로, 기타 지역으로 구분하여 사적들을 26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 안내서와는 다르지만, 소개된 사적 중 대다수가 북촌과 종로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이곳을 여행하는 이들도 활용할 만하다.
역사는 문화재나 박물관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보국안민이라는 장대한 길도 손 뻗으면 닿는, 평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치던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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