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2 https://brunch.co.kr/@sichunju/151
3. 불교와 기독교 간의 대화
오늘 우리 사회의 종교계는 한편으로 종교인에 대한 신뢰의 감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인구의 감소라는 이중의 과제에 봉착해 있다. 거기에 더하여 인공지능의 등장이나 외계 생명체의 탐색, 과학기술의 극단적 발달 등을 통해 종교의 입지가 속절없이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때야말로, 종교/교단의 발전을 위한 종교/신앙이 아니라, 지혜와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깨달음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종교, 빛과 소금으로서 이 세상을 깨끗하고, 맑고,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종교로서의 본면목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 책(<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답하기 위하여 1박 2일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토론의 성과를 정리하고, 보완하여 간행한 것이다. 기본 출발점이“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라는 점만 공유한 가운데, 자유로운 접근과 형식의 발제가 진행되고, 이어서 이를 두고 상호 이해와 공감을 심화시키는 토론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종교’의 보편성이나 ‘같음’만을 추구하는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은 그것대로 가려내되, 그것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서 존중하고 오히려 거기에서 배워 나가는 공부의 장이기도 하였다. 이는 단지 듣기 좋고, 하기 쉬운 구두선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통찰 속에서 나온 것으로, 참가자 모두가 공유한 기본 인식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는 아시아 기독교인에게는 자기 밖에 있는 무엇과의 대화이기도 하지만, 이미 자기 속에 있는, 자기 기독교 신앙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무엇과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 39쪽)
딱딱하고 형식에 구애되는 논문이 아니라, 화두를 던지는 발제에 이어, 전문가로서의 고민과 현장에서의 실천적 경험들을 아우른 ‘종교 간 대화’는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지금 여기에서의 한국인(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음으로 양으로 끼치는 두 종교 간의 깊은 대화는 오늘의 한국 사회의 고민과 한국인 자신의 과제들이 공동화되고 해결되는 길을 찾아가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무엇보다,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나'로 귀결되는 인간 개개인의 깨달음/통찰/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기에, 자연스러운 대화 가운데 다음과 같은 통찰적인 시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너무나도 가지려 하고, 너무나도 존재하려 하며, 너무나도 힘을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유한한 세상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상호 간에 연결된 채 서로를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존재(有)만 혹은 무(無)만이 강요되는 그런 것이 삶이 아니라 존재와 무·삶과 죽음·충만함과 비움이 역설적으로 함께 공존하는 그런 곳이 바로 이 유한한 삶이다. 따라서 기독교와 불교가 나약함을 받아들이려 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비우고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모습은 결코 단순한 종교의 논의에 머물 수 없다. 왜냐하면 비움이란 근원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 충만한 존재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비우지 못하는 자는 결코 채울 수도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비우는 자는 넘치게 채울 수 있다. 따라서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비움 안에서 스스로를 비워 내고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기 원한다면, 인간이 모두 존재하기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깨어 부수면서 비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비움과 나약함이란 비로소 모든 것들이 그것의 희생을 통해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 77-78쪽, 밑줄은 인용자가)
이 책은 “불교와 기독교 간 대화의 출발점”으로 한국 사회에서 두 종교가 처하여 오늘까지 흘러온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제1부를 이룬다. 다음으로 종교간 대화의 이해의 심화는 각 종교의 “교의를 이해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기를 추구한다. 이러한 상호 교섭과 상호 이해를 통해, 각각의 종교에 대한 이해와 신앙은 깊어지고, 넓어져서 종교/교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진리와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는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상대방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면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입니다. 형상이 부처가 좌선하고 있는 것과 비슷해서 눈부처라고 붙였는데, 저는 형상만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도 담겨 있다고 봅니다. 상대방의 눈동자라는 기관은 타인 몸의 영역이지만,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분명히 나라는 자아입니다. 그 거울을 보며 내 안에서 타인을 해치거나 손해를 끼쳐 내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의 종자를 없애고 나를 희생하더라도 타인과 공존하고 더 나아가 그를 구제하려는 마음의 종자들, 곧 불성(佛性)이 싹을 틔워 그 형상으로 꽃을 피운 것이죠. 원효가 말하는 진속불이(眞俗不二)의 경지이지요. 그걸 바라보는 순간 타인은 나를 담고 있는 자로 변합니다. 나와 타자, 주와 객이 뒤섞이고 타자 속의 나, 내 안의 타자가 서로 오고 가면서 하나가 되는 경지입니다.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 80-81쪽, 밑줄은 인용자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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