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정환한울학교 이야기 (5)
길이 멀다. 어디로 가는 지 여정이 선명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혼자 나설 엄두가 안 날 때 길동무가 필요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가는 이가 있으면 나설 용기를 얻는다.
방정환한울학교가 방정환한울어린이집을 첫 번째 배움터로 만들어서 길을 나서기 시작할 때부터많은 길동무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노잣돈을 보태는 사람들이 있었고, 굽이굽이 거친 길을 넘어서야할 때마다 길을 열어주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그 힘으로 만 3년을 넘어설 수 있었다.
3년 전 어린이집을 만들 때 정성을 모으고 마음을 모았던 분들의 그 소중한 기운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 그 귀한 정성이 이곳에 머무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부모님들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어린이집 천정에 나무 방울을 만들어서 매달아 두었다. 1년이 지난 뒤 초록 나뭇잎을 만들어서 한 살을 응원했다. 이제 3년을 넘어서서 이번에 졸업하는 아이들은 꽃을 만들어서 달아 둘 것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아이들의 그 씩씩한 기운이 남아서 후배들도 그들처럼 당당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지켜줄 것이다. 그 첫걸음을 함께 해 준 길동무님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올 해 또 다른 길 하나를 만들었다. 두 번째 배움터 ‘방정환 텃밭책놀이터’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가야하는 거친 길이다. 여기에도 많은 길동무들이 나서주었다. 수익이 되겠냐고,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이용 시설이 불편하다고... 무성한 안 될 이유가 나열될 때도 뚜벅뚜벅 나서는 걸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해도 후원 회비를 잊지 않고 꼬박꼬박 넣어주는 사람들, 손 하나라도 보태겠다고 휴일을 반납하고 노동봉사를 해 주던 사람들, 먼 길도 마다않고 틈을 내서 구석구석을 채워주던 사람들... 그 분들 덕분에 방정환한울학교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저런 손길이 많이 필요했던 한 해였다. 봄부터 시작한 텃밭책놀이터 공사는 몇 번의 어려움을 넘어서면서 만들어졌다. 텃밭과 비닐하우스라는 실내 공간을 구상하고 설계를 해 놓고 보니 예산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꿈같던 공간은 다시 변신을 하고 결국 있던 비닐하우스 골조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비용을 줄이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인건비를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노동봉사로 공사를 진행했다. 후원회원으로 지켜봐주시던 분이 선 듯 길동무로 나서서 공사를 맡아주었다. 실무자들이 달라붙고, 인근에 계신 분들이 손을 보태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해내며 힘에 부치고 있을 때 ‘나도 이런 공간을 꿈꾸었다’고 뜻밖의 길동무가 나타나 주말을 몽땅 헌신해 주었다. 그 덕분에 또 한 힘을 얻어 뚝딱뚝딱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텃밭 농사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도 부족하고 현지인도 아닌 탓에 좌충우돌하고 있을 때 번개처럼 등장해준 길동무, 마을 이장님을 역임하셨기에 이런저런 문제도 중재를 해 주시고, 오랫동안 남의 손에 맡겼던 터라 피폐해진 농토를 땅콩(작은포크레인)으로 두루 갈고 엎어주었다. 그 곁에서 땅콩 두 알처럼 단짝으로 손발을 맞춰주던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 분들은 텃밭책놀이터에 꼭 필요했던 물줄기를 끌어온 주역들이며 새벽1시까지 트럭에 물을 싣고 와서 5톤 물통을 가득 채워 준 길동무들이기도 하다. 겨울이 오면서 난로에 땔감도 부지런히 마련해 주고 있다. 막상 이것 저것 심어놓고 보니 뭐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었다. 절대적인 일손이 부족하여 종종거리고 있을 때 서울에서 달려온 묵은 길동무,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식구들이 고구마밭 울타리를 둘러주어서 고라니의 습격을 막아주었다.
비닐하우스의 실내공간인 책놀이터를 채워 줄 책과 책꽂이를 운송비까지 부담하며 한 트럭 보내준 예전의 책동무도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보관이 잘 돼서 책이 깨끗했고, 근간 책들이 많아서 책을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그 책들이 아이들 손에서 즐거이 놀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방정환선생님의 뜻을 펼쳐내고자 하는 뜻을 존중하여 책을 보내주고, 자료를 아낌없이 후원해 주었던, 초방과 어린이문화연대도 좋은 길동무임에 틀림없다.
이사를 하거나 집수리를 하는 집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어서 새벽바람 맞으며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해준 길동무도 생각난다. 그래서 텃밭책놀이터에는 모두 되살림 물건들이다. 자칫 버려질 뻔했던 물건들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그 쓰임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곳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도 뭐라도 한 가지 얹어주고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실내공간에 꼭 필요했던 평상을 직접 제작해서 설치까지 해 준 길동무, 텅 빈 천정에 그림책 속 인물들을 불러내서 그려 준 청소년 길동무, 책에 하나하나 고유번호를 붙여준 방정환한울어린이집 부모님들과 선생님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휴일을 반납하며 큰 일꾼이 되어주었던 경주의 방정환한울학교 실무자들도 잊을 수 없는 길동무이다.
생명 순환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응원하며 생태화장실 만들어 주었던 사람들, 천도교대학생단동문회에서 예산지원을 하고 그 일을 도맡아준 길동무들도 있다. 남해, 서울, 보은, 거창에서 매주 2~3일을 할애해서 두 달에 가까운 긴 릴레이를 하며 드디어 완성 해냈다. 열악한 조건들을 기꺼이 승화해낸 멋진 길동무들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서 태풍이 어린이집을 덮쳤다. 지난 늦봄에 한여름 땡볕을 가려줄 그늘 막을 만들어 준 길동무들은 태풍이 몰아쳐서 그늘 막 기둥이 뽑혀나간 가을밤에 비바람을 맞으며 해체작업을 해 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낭패를 볼 뻔했던 위급한 순간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1년 내내 먹을 김장을 담궜다. 3일 동안 품을 나누어 준 부모 길동무들,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아이들 실내복을 제작해 주고 있는 길동무도 생각난다. 잔물 방정환선생님의 뜻을 살펴서 지금 여기에 펼쳐낼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잔물결공부모임’도 중요한 길동무 중의 하나이다. 자잘한 손길까지 다 나열할 수는 없어도 길동무들의 등장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전 구간이 아니라도 어떤 한 구간 등장해서 손을 내밀어 주는 길동무들 덕분에 올 한 해도 참 풍요로웠다. “참,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에 너무 짧은 말이지만 바람에 실어서 그 분들께로 오롯이 전달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본다.
혹시라도 마음을 보태고 정성을 얹는 과정에서 작게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잘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서, 세차게 밀고 가던 의욕이 넘쳐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일 테니 널리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참여할 적절한 시기나 방법을 몰라서, 혹은 좀 더 영글어 지는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방정환한울학교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는 길동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분들과도 길동무로 멋진 조우를 기대하는 것으로 다가오는 새해, 새 날을 맞이하는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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