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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07. 2018

지금은 가을걷이 중

방정환한울학교 이야기 - 4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저 노랫말이 바로 이거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 엊그제이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방정환텃밭책놀터에 단체 탐방을 온다고 해서 아이들과 놀거리를 찾던 중이었다. 


봉숭아꽃물들이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봉숭아꽃을 따서 모으다가 봉글봉글한 씨앗이 눈에 들어오기에 하나를 따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씨앗을 살짝 눌러보았다. 앗! ‘톡’ 하고 터진다. 손을 대니 톡하고 터지는 봉숭아가 맞다. 그 말이 이 거였구나! 감탄을 한다. 아이들도 그렇게 놀라울까? 얼른 알려주고 싶다.


맨드라미는 몸통에 씨앗이 붙었다. 살살 긁어내어 모은다. 까만 깨알 같은 씨앗들이 나온다. 아주까리 씨앗을 보여주니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아이들이 "무당벌레 같아요." "노린재 닮았어요."  그동안 본 데가 있는 아이들이라 할 수 있는 말이다.


씨앗 여섯 개를 얻어 와서 심은 목화가 다섯 그루가 자라서 목화송이를 터뜨렸다. 나도 아이들도 신기하게 목화가 자라고 꽃이 피고 씨를 맺는 걸 지켜보았다. 씨앗은 몽글몽글한 솜뭉치가 감싸고 있다. 텃밭을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목화를 보여주며 많이 자랑했다. 씨앗을 받아서 내년에는 더 심고, 또 후년에는 더 늘려서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아이들 이불을 해주겠다고 큰소리도 쳤다. 제법 한소쿠리 씨앗을 받아두었으니 내년에 아이들과 또 심을 것이다. 목화가 50그루는 더 자랄 것이다.


방정환텃밭책놀이터에 꽃들이 피고 진다. 가뭄이 심했던 지난 여름동안 노랗게 타 들어갔던 꽃들이다. 그래도 가을비에 힘을 얻어서 꽃을 피우고 씨를 맺었다. 아이들이 봄부터 여름까지 부지런히 물을 주며 씩씩하게 자라라고 일러준 꽃들이다. 

그 사이 아이들도 자랐다. 3월에 비해 다리에 힘이 세졌다. 징금다리도 선생님을 찾지 않고 당당하게 혼자 건너는 아이들로 자랐다. 호미를 쥐는 손도 야물다. 꽃씨를 거두며 내년 봄에 피워 줄 꽃을 상상하듯이 우리 아이들이 보여 줄 새봄도 기대하면서 가을걷이가 맛나다.


들깨 털기를 한다. 때가 된 들깨를 낯으로 베어 눕혔다. 바싹 말랐으니 두드려 깨를 털 차례다. 도리깨로 하면 제격이겠지만 구하기 힘들어서 고추 지지대로 대신한다. 내년에는 마을 어르신께 부탁해서 만들어 볼 생각이다. 톡·톡·톡

장단도 맞춰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숫자도 헤아리며 들깨 털이를 한다. 톡, 한 번 쳐두고 ‘차르르’ 쏟아지는 소리도 귀 기울여 들어본다. ‘우와 깨가 쏟아진다’ 왕년에 엄마 곁에서 깨 좀 털어본 선생님의 함성이다.


“향기가 나요~.” 7살 언니가 먼저 향긋한 들깨 향기를 알아차린다. 털려 나온 들깨를 채에 모은다. 말하지 않았는데 할머니 댁에서 본 적이 있는 콩이가 툭툭툭 채를 두드린다. 대야에 소복히 쌓인 들깨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이 논다.

“인제 좀 농부 같아요.~” 

어설프기 그지없는, 농부 흉내 내고 있는 나를 두고 선생님이 한 말이다. 추수를 하니 제법 농사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기름도 짜고 볶아서 양념도 하고 밥에도 넣어 먹고, 설기를 찔 때도 넣으면 꼭꼭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고 아이들한테 알려준다.


고구마 캐기는 아이들한테 완전 인기였다. 고구마 줄기도 같이 걷고, 호미로 다치지 않게 살살 파다가 고구마가 보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흙 속에서 캐낸 고구마를 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고구마 수확을 하고 빈 밭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포슬포슬한 흙이 있는 빈 밭에 호미를 들고 들어가 땅을 파기 시작한다. 땅파기, 즉 흙놀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워낙 집에서 깔끔하게 자란 아이들이 종종 처음 접근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경우는 있지만 경험을 하고 나면 땅파기 본능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초등학생 20여명이 엄마들과 함께 텃밭책놀이터에 놀러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당연 고구마밭이었다. 이미 빈 땅이 되었지만 호미를 쥐어주니 아주 집중해서 땅파기를 한다. 그러다 고구마 이삭이라도 발견하면 “고구마닷!”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축구 경기에 골인을 넣고 달려가는 선수처럼 고구마를 높이 들고 뛰어간다. 그 뒤를 아이들이 따라 뛴다.


아이들이 거둬들인 고구마는 텃밭책놀이터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화목 난로 위에서 군고구마로 변신 중이다. 겨울 내내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될 것이다. 해와 비와 바람의 기운으로 다듬고 땅심으로 키워낸 고구마, 더군다나 여름 내내 물 조리개를 들고 수없이 오가며 물을 준 고구마다. 아이들 몸과 마음을 살찌울 한울기운이 오롯이 담겨있기에 겨울 내내 오글오글 모여앉아 맛나게 먹을 참이다.


여름 햇살 가득 품은 빨간 고추도 따고, 흩뿌려두고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메밀도 추수를 한다. 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한 쪽 귀퉁이는 목과 어깨에 걸어서 알곡을 담을 수 있도록 하고 가위를 든 7살 언니들이 똑깍똑깍 잘도 잘라낸다. 금방 싫증을 낼 줄 알았더니 제법 한소구리가 되도록 거둬온다. 내년에 씨앗이라도 거두면 좋겠다했더니 그 정도는 될 듯하다.


작은 농부님들과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을 함께 했다. 거둬들인 농작물들과 씨앗을 보면 버릴 게 없다. 저마다 자기 모습으로 생겨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기 모습으로 자랄 것이다. 스스로 자라는 기쁜 어린이가 될 수 있도록 곁에서 거들고 살피는 일, 그 귀한 일을 방정환한울학교에서 해 나갈 것이다. 

방정환 선생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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