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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0. 2016

동학, 봄 꿈(4.끝)

-수운이 맞이한 다섯 번의 봄 이야기

봄꽃, 씨앗을 품다

수운 선생은 이리하여 봄날의 꽃을 피워 냈다. 그 꽃은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맺었다. 계해년 8월, 수운 선생은 해월 최시형에게 동학의 도통을 전수하였다. 도의 장래를 위한 수운 선생 세 번째로 마련 도구이다. 그것은 수운 선생이 피워 올린 봄꽃 속의 씨앗이다. 다만, 세상 사람이 그 뜻을 알아 가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수운 선생의 시대는 이제 마지막 겨울과 봄으로 향해 간다.


동학의 시간과 공간이 확장될수록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학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차이가 생겨났다. 기울어짐, 그것은 병이 되었다. 수운 선생은 진단하고 처방하였다; “얻기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려우나 실은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여 봄같이 화하기를 기다리라(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 題書).”  이는 수운 선생의 또다른 시 “남쪽별이 둥글게 차고 북쪽 하수가 돌아오면 대도가 한울같이 겁회를 벗으리라(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와도 통하는 것이니, 두고두고 좌잠(座箴)으로 삼을 경구(警句)이다.


계해년 겨울, 수운 선생의 목을 옥죄는 선천의 겨울바람이 불어 닥쳤다. 한양의 조선 조정에서 내려 보낸 정운구 일행이 수운 선생과 수십 명의 제자들을 체포하였다. 한겨울 내내 대구와 한양(과천)을 오간 끝에 이듬해 갑자년(1864), 봄기운 완연한 어느 날 수운 선생은 감옥 속에서 해월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수운 선생은 시 한 수와 당부의 글을 해월 선생에게 전하였다.


먼저 유시(遺詩). “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혐극이 없고, 기둥이 마른 것 같으나 힘은 남아 있도다(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 등불과 물 사이에 의심할 틈(嫌隙)이 없고, 마른 기둥이 오히려 남은 힘이 있다 함은 무슨 뜻인가? 나는 이렇게 읽는다; “나는 곧 그대이며 그대는 곧 나이니(吾心卽汝心) 나는 주검으로도 오히려 살아 있으리라.”


다음, 한 조각 글. 고비원주(高飛遠走). 

높이 나는 새처럼 멀리 도망쳐라? 아니다. 높이 날아 멀리 멀리까지 도의 봄기운이 퍼져나가게 하라. 그렇다.

동학, 무극대도가 이 세상에 전해진 지 다섯 번째 맞는 봄날, 3월 10일. 수운 선생은 마침에 형장에 섰다. 형리의 칼이 하늘과 땅을 오가고, 수운 선생의 선혈이 대지를 적시고, 네 바다로 흘러 하늘로 이어졌다. 봄날 아지랑이 속을 나르는 민들레 홀씨처럼, 천도의 봄소식은 퍼지고 퍼지고 퍼져 나갔다.


동학은 그렇게 봄에 시작되어 봄을 노래하며, 봄을 전하고 있다.  


동학의 봄꽃은 다시 피어날 것인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팽목항에서 시작된 봄이 이 세상을 온통 봄기운으로 넘쳐나게 할 것인지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불임의 껍데기 봄으로 귀결될지도 정해진 바 없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마라, 네 몸이 봄기운으로 충만하도록 연마할 뿐. 봄이 간다고 서러워 마라, 도처에 봄은 이미 와 있으니.


동학의 봄소식이 전파처럼 흘러 다니는 이 세상에,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간다. 세상에는 선천의 겨울바람이 여전히 불어오가고 있다. 그 바람의 이름은 각자위심(各自爲心). 사람을 망치는 것은 오직, 나(인간)만을 중심으로 하는 단절의 생각과 삶. 사지 단절, 영육 단절은 곧 죽음이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열쇠는 오직 사람이다. 한울로부터 오는 봄소식을 받아 실현하는 것은 오직 사람. 다시, 봄은 사람으로 온다. 오늘 이 시대, 동학하는 사람들, 혹은 동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동귀일체(同歸一體); “쇠운이 지극하면 성운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하였던가.”


그 동귀일체는 또 어떻게 하는가? 마음을 화하고 기운을 화하게 하여 봄같이 화하기를 기다리라 천명하신 수운 선생이 품은 씨앗, 해월 선생의 노래에 그 답이 있다.


“성인의 덕행은 봄바람의 크게 화한 원기가 초목군생에 퍼짐과 같으리라(聖人之德行 如春風泰和之元氣 布於草木群生也, 聖人之德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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