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입춘 비는 말'
봄을 맞으러,
파주(출판단지)에
와 있습니다.
내 생에, 봄을 맞으러 외출을 한 적이 있나 싶습니다.
기억을 못하는 것도, 없었던 셈으로 치면, 내 생에 처음으로 봄을 맞으러 나와 있습니다.
현수당, 현서, 현빈이와 점심을 먹고, 지금은 북카페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와 더불어 봄맞이를 한 기억은 확실히 없습니다. 내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님이 함께 봄을 맞으러 나와 함께 있습니다. 누님은 멀리 남쪽 바다 근처에 살고 계십니다.]
입춘(立春)은 글자 그대로는 '곧 봄'이라는 뜻이 되는데(立='곧'),
이 말도 좋지만, 좀더 풀어쓰면 '봄맞이날'쯤이 되겠다 싶습니다.
지난 한해,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이번 겨울은 그 어둠보다는 덜 추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봄맞이날을 기다리고 기다려, 봄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수운 선생의 생애에도 '봄'은 있었습니다.
동학, 봄 꿈 (4, 끝) https://brunch.co.kr/@sichunju/19
동학, 봄 꿈 (3) https://brunch.co.kr/@sichunju/18
동학, 봄 꿈 (2) https://brunch.co.kr/@sichunju/15
동학, 봄 꿈 (1) https://brunch.co.kr/@sichunju/14
그중에서 '입춘' 이야기(동학, 봄 꿈(2))를 다시 끄집어 내어 곱씹습니다.
수운 선생은 '세상을 건질' 그리고 '나 자신을 건질' 도를 구하기 위하여 '방방곡곡행행진(方方谷谷行行盡)'으로 두루 돌아다니다가, 기미년(1859)년 늦가을에 구미산 아래 '용담'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기미년에서 경신년(1860)으로 이어지는 겨울 동안, 수운은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올려 하늘에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열릴 듯 열릴 듯 열리지 않는 '깨달음의 문', 그 '희망고문'의 극한 끝자락에서 문득 한 귀의 글을 내뱉습니다.
"불출산외(不出山外)!"
역사 속의 장면은 '불출산외'로 끝나지만, 앞의 글(동학, 봄 꿈(2))에서 저는 이 장면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혹독한 산속의 겨울을 보내고, 산에 들에 냉이 달래가 땅 속의 봄을 길어 올리던 경신년(1860) 입춘(立春). 수운은 하늘에서 오는 봄을 맞으려 결의를 다진다.
불출산외(不出山外). 도를 깨닫기 전에는 산 밖을 나서지 않으리라.
아니다. 반드시 세상을 건질 도를 깨달아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리라(必出山外).
'아니다'부터가 저의 풀이입니다.
'불출산외'를 '필출산외'로 읽어내던, 그때의 제 마음의 각오와 용기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그뿐.
지금의 저는 그때의 마음(불출산외->필출산외)에 다시, 공감하지 아니합니다.
'불출산외'는 그저 '불출산외'로서 충분하다는 것이 지금의 제 마음입니다.
불출산외!
'그렇다!'
입니다.
......
불출산외의 벼랑끝에서, 수운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허공으로 몸을 날립니다.
그것이 수운의 입춘시(立春詩)입니다.
입춘시 (立春詩)
도의 기운을 엄숙히 보존해야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지 않으리니,
꿈을 잃어버린
세상 사람들처럼은 되지 않으리라
(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
_ 수운, 1860 봄.
1860년, 경신년의 '봄맞이날'에 쓴, '봄'이라는 희망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그날 수운의 마음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의 덕담 대신에
피를 토하는 듯한 염원과 각오, 그리고 그만큼의 어두움입니다.
무엇보다,
외로움입니다.
결과론으로서 몇 달 후(1860년 4월 5일) 닥쳐올 득도(得道)/각도(覺道)의 그 순간을 예단하지 않는다면, 입춘시 속에서 수운 선생은 외롭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수운이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수운을 외토리로 내돌리고 있음이 역력합니다.
그 외로움이 빅뱅 이전, 아직 빛조차 없던 개벽 이전의 그 어두움을 낳고, 어둠 속에서도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살아 있습니다.
수운 선생도 자신을 외로움으로 내몰아가는 세상(사람)의 인심을, (아마도 사모님이 전하는 소식을 통해) 낱낱이 알고 있습니다.
(한울님이 말씀하시기를)
우습다 자네 사람 (=수운 선생) 백천만사 행할 때는 무슨 뜻을 그러하며
입산한 그 달부터 자호 이름 고칠 때는 무슨 뜻을 그러한고?
소위 입춘 비는 말은 복록은 아니 빌고
무슨 경륜 포부 있어 세간중인부동귀라
의심 없이 지어 내어 완연히 붙여 두니
세상 사람 구경할 때 자네 마음 어떻던고... (용담유사, 교훈가)
세상 사람들은 수운이 "세상을 건지고, 스스로를 구원할 도를 찾아 전국을 떠돌다가, 결국 빈털털이에 약간의 이적(異跡)을 행할 줄 아는 '복술(卜術)'이가 되어 돌아오더니,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글까지 써 붙이고 용담에 틀어박혀 있다"며 수군거렸던 것입니다.
수운은 외로웠고, 어두웠고, 추웠습니다.
그 외로움이 '동학'을 낳았습니다.
그 어두움이 개벽의 빛으로 터져나왔습니다.
백척간두 위에서 맞던 얼음칼의 그 섬뜩한 추위가 '춘삼월 호시절'로 '빅뱅'하였습니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알아보고, 어두움이 어두움을 느낍니다.
지난 한해의 외로움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되겠지요.
그 어두움도 오래토록 어두움으로 남아 있겠지요.
지금, 입춘 즈음에도 한파는 계속되고,
입춘이 지난 후에도, 또다시 우심한 한파는 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외로움은 마침내 '동학'이 되고, 어두움은 기어코 개벽이 되고, 추위는 덕분에 '호시절'이 될 것입니다.
그런 봄을 맞으러,
저는 지금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봄을, 여러 모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봄이 느껴지면, 한울님과 수운 선생이 보내신 봄인 줄로 아시고
여러분 눈(오감)에 봄이 보이시면, 제가 보낸 봄이 도착한 줄로 아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