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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06. 2018

사형제 폐지, 안과 밖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류 제 동 |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초빙교수 [개벽신문] 제66호, 2017년 8월호 


https://goo.gl/t397jV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여 죽일 수 있는가?


죽음은 사람에게 가장 절대적인 차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그러했겠지만, 자연과학의 발달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 어려워진 오늘날의 세계에서 죽음의 절대성은 더욱 무거운 절실함을 지닌다. 죽음 이후에 내세가 있다고 쉽게 믿었던 근대 이전에도 죽음은 심각한 문제였겠지만,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 것도 없을지 자신할 수 없게 된 오늘날에 있어서 죽음은 그 너머를 알 수 없는 절대적 벽으로 다가선다. 


더 나아가 그냥 죽음이 아니라 죽임은 더욱 몸서리쳐지는 끔찍한 일로 다가온다. 어떤 죽음이 그냥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타살로 인식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서 강력한 보복과 응징에 대한 욕망과 함께 강렬한 증오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죽임에 대한 대응은 죽임이어야 한다는 보복의 논리가 힘을 얻는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된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이찬수·이서현 역, 모시는 사람들)의 저자이자 일본의 원로 법학자 사나다 요시아키는 그 보복의 논리에 감연히 맞서서 호소한다. 죽임에 대한 죽임은 죽임의 문화를 증폭시키고 영속화시킬 뿐이라는 것이 그의 호소이다. 


독실한 불자로서 법구경의 “실로 세상에서 증오를 증오로 갚으려 하면 증오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증오를 버려야 사라진다.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라는 말씀을 그가 인용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그의 이러한 호소는 이 책에 담긴 여러 사형수의 간절한 참회의 기록, 불교 경전에서 가려 뽑은 이야기들, 그리고 사형제 폐지와 관련하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에 관하여 원로 법학자로서 저자가 전문적이면서도 평이하게 풀어내는 내용들과 함께 우리의 가슴에 깊이 스며든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겠다는 생각, 더군다나 죽임으로써, 그 사람의 생명을 끝낸다는 심판을 하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사람은 절대적으로 악해서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나의 증오심이 풀리고 또한 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배경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나다 요시아키는 불자로서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 사람의 악이 절대적 악이 아니라 여러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불교 교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러 사회조건에 의하여 사람이 악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예컨대 그가 사례로 드는 니노미야 구니히코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그 후유증으로 퇴직 등 직장생활에 여러 어려움을 겪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불륜에 충격을 받으면서 “세상에 믿을 것은 없다는 절망과 고독”속에서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범죄의 수렁으로, 마침내는 살인강도의 행각으로까지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


위와 같은 사례들을 통하여 절대적이고 실체적인 악의 화신으로서 사형이라는 죽임을 통해서 제거되어야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사나다 요시아키는 호소한다. 어떠한 악인이라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선한 인연을 통하여 갱생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행간에 흐르는 간절함이다.


책 속의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시마 아키토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고 병약한 소년으로서 ‘저능아 취급’을 당하면서 성격이 비틀어지고 점점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다가 강도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는 그러한 생애 가운데에서도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에게서 그림의 구도가 좋다는 칭찬을 받은 것을 기억해내어 그 담임선생님과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로서 절망하지 않고 작곡가로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최선의 삶을 살게 된 그는 누구에게나 삶의 변화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사실 사나다 요시아키도 언급하듯이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필멸의 죽음으로 향해가는 사형수이기도 하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남의 목숨을 죽여서 살아가고 있는 악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죽임의 심판을 내릴 자격이 있을 만큼 떳떳한 인간은 아예 없다. 또한 불교적 연기(緣起) 사상에서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과학에서도 범죄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의 산물임이 밝혀지고 있다. 범죄자 본인의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공범임을 의식하고 사회 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


사나다 요시아키의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는 어느 한 부분 건너뛸 수 없이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책이다. 특히 일제 식민지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최근에도 위안부 문제 등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본인 가운데 이렇게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접하게 되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사형제 폐지뿐만 아니라 일본인에 대한 인식 제고를 통하여 한일 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이라고도 하겠다. 번역도 불교와 평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찬수 교수 그리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서현 부녀가 공동 작업을 통하여 평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우리말로 되어 있다. 꼼꼼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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